[데스크 칼럼]방향성 없는 정부의 재계 정책 -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3-05-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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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밀어내기 폭언과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로 불거진 갑을(甲乙) 사태, 건설업자의 산장 성 접대 사건, NHN의 독점적 지위 남용 수사, CJ그룹 비자금 사건, 유명 인사들의 조세피난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논란과 국세청 조사, 고위층 자녀의 부정입학 비리와 학교재단 수사.

지난 두 달여 동안 벌어진 굵직한 경제계 이슈들이다. 원래 정권 초기에는 많은 사안이 발생한다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기자들의 손이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다.

이들 사건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가 있다. 바로 ‘분노’다. 이는 빈부격차 확대로 상처 받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시름하고 있는 서민의 삶에 근간하고 있다. 재계의 잇단 추문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를 편승한 최근의 정치권 시류다. ‘을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의 명분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새 정부 초기 인사 잡음과 윤창중 방미 성추행 사태 등으로 정치권에 쏟아졌던 질타를 재계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의도는 아닐까 반문해 본다.

검찰, 공정위, 국세청 등 사정 기관이 총 동원된 재계 옭죄기는 갑을 사태를 시작으로 재점화됐다. 압박의 세기도 전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대선 이슈였던 경제민주화도 갑자기 ‘속도 조절’에서 ‘공세’로 궤도 수정됐다. 국회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 경제5단체 부회장들이 국회를 찾았던 일을 돌아보자. 그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 주려는 의원들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입법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다음날 하도급법, 임원연봉공개법, 60세 정년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법들이 모두 통과됐다.

한 경제계 인사는 “좌절스럽다”라는 문장으로 현 상황을 표현했다. 마치 재계 전체가 범죄자 집단인 양 매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죄가 있는 기업이라면 그 죄를 물으면 되는 것인데, 최근의 기류는 이를 틈타 모든 기업을 압박할 명분을 찾는 것 같다”며 “정치권이 반재벌 정서를 이용해 속전속결로 기업을 옭아 맬 방법을 만들려는 것 아니겠냐”고 재계의 시각을 말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 나올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무려 30여개에 달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 소송제 강화는 물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현재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는 모양새다. 모두 재계 전체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법안이다.

대기업 만이 영향권일까.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한 하도급법은 오히려 중소기업 피해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큰 영향을 주는 법안도 다수 대기하고 있어 파장은 소규모 기업까지 경제계 전반에 밀어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선순환시키자는 데 우선적인 목표를 뒀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기대통령’을 자임한 것도 중소기업이 국내 고용의 85% 가량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초 대기업에게 투자와 고용확대를 촉구하며 기업 규모에 따른 사회적인 역할을 강조한 것도 경제를 살려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주문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한 선순환 전략에서 단 몇 달 만에 경제민주화 실천으로 급전환된 것은 정부 정책이 기준을 잡지 못하며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부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재계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서는 안된다.

재계는 잔뜩 움추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투자, 고용 등 기업 활동을 위한 전략도 표류하기 십상이다. 불투명한 경제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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