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거라 믿어요. 좋은 남편 만나, 예쁜 자식도 낳고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이재승(78·춘천시 퇴계동)씨에게 지난 1983년 7월29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같은 날이다.
이날 이씨와 가족들은 양양군 현남면 남애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단란한 가족여행이 될 것 같았던 2박3일의 둘째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막내딸 선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흘여간 양양군 일대를 쥐잡듯이 살폈지만 그 어디에도 선희의 흔적은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흔 여덟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이씨는 요즘도 딸 선희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입니다.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편하게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10여년 동안 딸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돌리며 백방으로 뛰었고 이따금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허사였다. 경찰뿐만 아닌 실종아동과 관련된 기관이면 어디든지 밤낮 찾아다니며 "딸을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딸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에 부풀어 막상 찾아가 보면 내딸이 아니였고, 그렇게 또 실망해서 돌아오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고 이제는 연락조차 오지 않습니다."
이씨는 딸을 찾는 시간으로 소비하다보니 다니던 직장도 관둬야 했다. 딸이 먼저 찾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사는 꿈꿔본 적이 없다.
딸을 잃어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평생을 죄인으로 살던 아내는 결국 2년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후에 저 세상에서 만날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선희를 찾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던 이씨는 최근 제2의 자신의 딸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 실종 아동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참석하기 바쁘다.
이씨는 작년 종영한 KBS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같은 일들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길 소망했다.
"생떼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았습니다. 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못난 아비는 그저 딸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그게 많이 걱정입니다. 주위에서 우리 선희를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이 늙은이가 딸을 보고 갈 수 있게 꼭 도와주십시오." 이씨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선희의 경우처럼 실종아동 수사 중에서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장기실종아동을 찾는 일이 가장 힘들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단서가 거의 없고, 제보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강원지역 아동 실종 사건은 2009년 183건, 2010년 279건, 2011년 301건이며 2012년은 237건에 달한다. 지난 22일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58건이 접수됐다.
이 중 도내에서는 총 16명의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실종아동과 관련해 경찰들 역시 아이들이 하루빨리 가정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또 그만큼 노력하고 있지만 장기실종으로 이어진다면 수사가 난항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민간 차원에서 실종아동 예방을 위한 사전등록제 등을 충분한 관심을 갖고 실시해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경찰의 인력 부족으로 당장 벌어진 사건엔 신속하게 수사를 하고 있지만 장기실종수사전담 경찰의 인력 증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없어 힘들어하는 가정에게 생활의 안정과 보탬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