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을의 분노’ 공정위도 책임 있다- 김미영 정치경제부 기자

입력 2013-05-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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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을(乙)의 분노’다.

정치권은 지난 대선에서 앞다퉈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대국민 ‘호객’ 행위를 내세웠지만 선거 후엔 모여든 ‘을’들 앞에서 주춤거렸다. 그 사이 3명의 편의점주가 ‘갑(甲)의 횡포’와 생활고를 못 이겨 목숨을 끊었고, 남양유업 욕설 녹취록과 농심 ‘삥처리’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을의 분노는 사회 곳곳에서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을은 국회든 거리든 자리가 마련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갑의 횡포를 증언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중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선 제품 밀어내기 등 갑의 불공정거래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를 향한 원망과 질타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공정위가 갑의 횡포를 막지 못해 혹은 막지 않아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을은 공정위에 대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조사를 요구하니 증거를 갖고 오라면서 조사에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거나 “농심의 밀어내기를 신고했더니 사측 변명만 해 주더라”며 성토한다. 신고했다간 제품도 안 주고 갑이 보복할까 두려워 참다 참다 공정위를 찾아간 을들을 두 번 울렸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오죽하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공정위가 슈퍼갑, 남양유업이 갑이고 대리점이 을이라면 슈퍼갑과 갑의 유착관계로 슈퍼갑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종훈 의원)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공정위는 법규 미비,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관련 법 개정 노력은 충분했나. 현재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 중인 이른바 남양유업법을 공정위 차원에서 먼저 입법 추진할 순 없었을까.

공정위는 여기에 지난 가을 국정감사 때부터 지적돼온 편의점 문제만 해도 3명이 목숨을 버리고 나서야 전국 편의점의 불공정행위 조사에 돌입했다. 최인숙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간사는 “곤란을 겪는 가맹점주 가운데 공정위의 산하기관인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을 아는 이도 드물다. 공정위가 홍보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제라도 공정위가 갑의 불공정거래 행태에 서슬 퍼런 칼을 빼든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안이 터지고 난 뒤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자칫 뒷북행정이 될 수 있다”는 노대래 공정위원장의 선제적 대응 주문도 인상 깊다. 앞으로도 정치권 분위기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지금의 각오대로 불공정거래 행위 단속에 나서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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