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계열사를 흡수합병해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재무구조 악화에 따른 모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거세지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자구책 중 하나로 풀이된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최근까지 21개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자회사 또는 계열회사 등과 합병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건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특히 합병을 결정한 상장사의 절반 가량(10개 기업)이 재무구조가 악화된 계열사를 흡수합병해 부실회사 정리에 나선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LG전자는 지난달 24일 자동차 부품설계 엔지니어링 전문 계열사인 브이이엔에스를 1:0의 비율로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브이이엔에스는 LG가 8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LG씨엔에스의 100% 자회사로 지난 2004년 물적분할했다. 회사측은 “합병 후 자동차 부품사업 추가 확보에 따른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밝혔지만 피합병회사인 브이이엔에스의 재무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 2년간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며 2012 회계연도 기준 부채비율은 376%에 달한다. 부채비율 200% 이상은 민간에서 위험 수위로 간주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자동차와 IT의 결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합병은 사업 포트폴리오 상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며 “다만 부실 계열사 정리는 최근 일감몰아주기 과세에 따른 상장사의 다운사이징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브이이엔에스의 특수관계자와 내부거래비율은 54%에 달한다.
같은달 12일 태광그룹은 티시스와 동림관광개발, TRM 등 3개 계열사에 대한 합병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티시스는 IT 서비스, 동림관광개발은 골프장 운영, TRM은 자산관리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업체들 역시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 티시스는 지난해 12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부채비율은 217%를 기록했다. 동림관광개발은 지난해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회사측은 “외형적 팽창을 자제하고 몸집 줄이기를 통한 경영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업계에서는 이번 부실 계열사 정리가 일감몰아주기 등 경제민주화 바람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한솔피앤에스 역시 계열사인 한솔페이퍼유통을 흡수합병하며 기업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회사측은 “동종 계열사 통합운영에 따른 시너지 발휘”를 합병 목적으로 밝혔지만 지난해 한솔페이퍼유통은 48억원의 당기순손실과 3757%의 부채비율을 기록한 적자기업이다. 이밖에도 롯데제과와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각각 27억원, 1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기린식품, 한화나노텍을 흡수합병해 기업 다운사이징에 나섰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회계사는 “기업의 합병을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지만 경우에 따라 합병의 시너지보다 부실계열사 정리가 목적인 케이스도 있을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재무사정이 좋지 않은 계열사의 흡수합병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만큼 투자자들은 추후 합병의 효과 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