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시장에도 ‘창업 2기’ 시대가 왔다. 이전에는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매장이 대세였다면 이젠 거품을 뺀 실속형이 인기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과거와 달리 은퇴 후 세대뿐만 아닌 2030세대가 창업시장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창업 2.0’ 시대다.
홍대를 지나 합정-상수를 잇는 상권은 ‘실속형 중소형’ 매장들이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상권이다. 합정-상수 상권의 가게들은 화려한 홍대 메인거리와 상반된 이미지를 띈다.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아날로그 감성적인 인테리어를 무기로 작은 가게들이 하나 둘 뿌리를 내렸다. 이 곳은 창업자라면 필히 벤치마킹해야 할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잡았다.
이 소박하지만 개성 있는 거리는 제2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상수역 인근은 80~90년대 복고감성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클럽 ‘밤과 음악사이’를 필두로 복고풍 카페와 술집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비교적 찾기 쉬운 큰 길에 위치한 ‘버들골이야기’ 상수점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운치있는 해산물 주점이다. 상수역 4번 출구에서 자전거가 달려있는 간판과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수족관을 찾으면 금방 눈에 띈다. 내부는 오래된 사진, 레코드판, 해산물 껍질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핸드메이드 식으로 꾸민 것이 돋보인다.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있는 당인리 발전소 거리는 요즘 같은 봄날 벚꽃구경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인근에는 ‘이리카페’, ‘앤트러사이트’ 등 이름있는 커피숍도 자리하고 있다. 카페가 즐비한 이 곳에서 당당하게 식사 메뉴로 경쟁하고 있는 ‘셰프의 국수전’은 합정역 5번 출구 인근 카페거리 중심에 위치해있다. 가게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국수 모형이 이 곳의 트레이드 마크다.
중소형 바람은 핫 플레이스(hot place?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곳)에만 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택가나 오피스가에도 실속있는 중소형 매장 창업 바람이 번지고 있다.
당산역 인근 아파트단지 가운데는 유독 주부와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파스타집이 있다. 거창하고 고급스러운 곳이 아니라 주택가 특성에 맞도록 심플한 인테리어에 다양한 메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온파스타’다. 33㎡(10평형)에서 일매출 70만원을 기록하고 있는 이 곳의 성공을 발판삼아 전국 주택가로 가맹점을 확대시킬 예정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던 오피스 상권에도 틈새시장을 뚫고 중소형 바람이 불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랜드 커피숍이 대세였던 오피스 상권이지만 이제는 알뜰 소비 트랜드에 맞춘 중소형 카페가 성업 중이다.
구로디지털단지와 충무로 상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타미하우스’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배달 전략이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며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가격거품을 걷어내고 단체주문을 받으면서 수익을 다각화 시킨 것이 성공 요인으로 손꼽힌다.
이같은 트랜드를 따라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세계맥주 1세대로 불리는 ‘와바’는 셀프 서빙 방식을 도입한 ‘맥주바켓’을 내놨고, 카페풍의 ‘치킨매니아’는 배달위주로 영업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청담동 유명 이자카야 ‘청담이상’ 역시 규모를 줄인 ‘하루 이상’을 선보이고 있다.
창업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 억원 대의 창업비용을 투자할 만한 여력이 있는 창업층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창업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세대가 2030 젊은 세대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취업도 힘든데다 경제력 또한 약하다 보니 개성있는 중소형 브랜드를 선호한다.
실제로 ‘이수근의 술집’에 따르면 최근 창업문의가 온 창업자 상당수가 20~30대다. 이수근을 전면에 내세워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초기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창업자 A씨(31세)는 “창업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경험이 없어 프랜차이즈 업체를 찾고 있다”며 “창업비용이 비싼 대형 프랜차이즈보다는 뚜렷한 개성과 경쟁력이 있는 중소형 브랜드에 눈이 가는 편이다”고 전했다.
‘잘 알려졌지만 비싼’ 브랜드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창업이 가능한 브랜드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또한 창업자 각자의 사정에 맞춰 도움을 주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상대적으로 브랜드력이 부족한 단점을 보완해주는 셈이다.
따뜻한 수프와 베이글을 판매하는 ‘수프앤베이글’은 창업자의 경제 규모에 따라 카페형 매장과 테이크아웃형 소형매장, 샵인샵 매장 등 여러 형태로 창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창업을 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메뉴 노하우와 운영 매뉴얼을 전수해주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논현동 줄서서 먹는 떡볶이 집에서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공수간’의 창업주는 30대 두 형제와 어머니다. 형제의 젊은 감각이 반영된 브랜드인 만큼 젊은 창업자들이 많이 찾는다. 홍대점 가맹점주 역시 35세 청년 창업자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은퇴층을 타깃으로 해 가맹사업을 전개하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크기와 비용을 줄이고 젊은 층을 유입하고 있는 추세다”며 “불경기 여파로 당분간은 창업시장에서 ‘중소형 바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