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대기업 옥석 가리기를 위한 재무구조 평가를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금융감독원이 현대자동차와 삼성 등 부채가 많은 30개 기업집단(계열)을 올해 주(主)채무계열로 지정했다. 주채무계열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일정 기준을 초과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선정 기준은 지난해 말 전체 금융기관 대출금의 0.1% 이상이다. 지난해 1조4622억원이었고 올해는 1조6152억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회사채 발행 등 기업의 시장성차입을 재무위험 관리대상에 포함하는 주채무계열 선정기준 개정안은 이번에 적용시키지 않았다.
9일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업감독규정에 의거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큰 30개 계열을 2013년도 주채무계열로 선정하고, 주채권은행들로 하여금 이달 말까지 재무구조평가를 실시하고, 5월말까지 재무구조 취약계열을 대상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해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주채무계열 선정기준 신용공여는 1조6152억원으로 지난해 1조4622억원 대비 1530억원(10.5%) 증가했다.
◇신규 선정 계열 없어…웅진, 유진 등 제외 = 올해 주채무계열은 웅진, 유진, 한국타이어, 하이트진로 등 4개 계열이 제외되면서 지난해 34개 대비 30개 계열로 줄었다. 새로 지정된 주채무계열은 없다.
웅진 계열의 경우 지난해 9월 주기업체인 웅진홀딩스와 소속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회생절차를 개시됐다. 유진 계열은 지난해 10월 하이마트가 매각돼 계열에서 제외됨에 따라 신용공여가 대폭 감소했다. 한국타이어와 하이트진로 계열은 영업현금 등으로 차입금을 상환해 신용공여가 감소했다.
주채무계열수는 지난 2009년 45개에서 2010년 41개, 2011년 37개로 해마다 감소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주채무계열의 소속계열사는 3487개로 지난해 주채무계열(34개, 3,562개)에 비해 75개 감소했다. 단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30개 계열을 기준으로 할 경우 국내계열사는 2개 감소, 해외계열사는 58개 증가해 총 56개사가 증가했다.
5대 계열의 외형확대는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390개로 전년 대비 48개(3.6%) 증가했다. 현대차(17개)와 삼성(35개) 계열의 해외진출 확대에 따라 해외법인이 58개 증가했다.
2012년말 30개 주채무계열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260조원으로 같은 기간 금융기관 총 신용공여액(1633조4000억원)의 15.9% 규모다. 현대차와 삼성, SK, LG, 현대중공업 등 상위 5대 계열의 신용공여액은 111조8000억원으로 금융기관 총 신용공여액의 6.8%, 전체 주채무계열 신용공여액의 43.0%를 차지했다.
주채무계열의 신용공여 순위는 전년 대비 5대 계열의 순위는 변동이 없다. 6대 이하 계열에서는 신세계(28위→22위) 등 11개 계열이 순위가 상승한 반면, STX(11위→14위) 등 8개 계열의 순위가 하락했다.
◇주채권은행, 주채무계열에 대해 재무구조평가 실시= 30개 주채무계열의 주채권은행은 6개 은행이 나누어 담당한다. 우리은행의 경우 삼성 등 11개 계열, 산업은행 한진 등 8개 계열, 하나은행 SK 등 4개 계열, 신한은행 롯데 등 3개 계열, 국민은행 KT, 신세계, 외환은행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주채권은행이다.
주채권은행들은 이번에 선정된 주채무계열에 대해 4월말까지 재무구조평가를 실시하고, 5월말까지 재무구조 취약계열을 대상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햐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에는 한진, 금호아시아나, STX, 동부, 대한전선, 성동조선해양 등 6곳이 약정을 체결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1월 6개 주채권은행과 '주채권은행 역할 강화와 주채무계열 선정기준 검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이달 중에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에 대한 최종안을 발표할 방침이었다. 기업이 회사채를 조달해 은행권 차입금을 상환한 뒤 주채무계열 관리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회사채시장을 활용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관련 기관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이번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연 부원장보는 "이번에 주채무 계열 선정기준(은행감독법에 따라) 30개 계열을 선정한 것"이라며 "내년에는 시장성 차입금을 반영해서 새로운 기준에 따라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감독당국의 개입으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 등 직접 금융시장의 위축을 우려했다. 주채무계열집단 선정 기준 강화는 회사채 발행시장의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저금리를 통한 회사채 발행환경이 우호적이긴 하지만 주채권은행의 관리감독이 강화될 경우 공격적인 회사채 발행이 자제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