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착한 영화’들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7번방의 선물’이 대표주자다. 개봉 단 3주만에 관객이 700만명을 넘어섰다.
누명을 쓰고 수감된 6살 지능의 ‘딸 바보’용구를 위해 7번방의 흉악범들이 합심해 용구의 어린 딸을 교도소로 몰래 들여오는 ‘미션 임파서블’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휴먼 가족드라마다.
폭력이나 성애 같은 자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아버지의 딸 사랑 같은 지고지순한 주제를 동화처럼 그린 영화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성적을 거둘 수 있는지 모두 놀라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감동 코드는 복지다. 박 당선인은 ‘증세(增稅) 없는 복지’를 실행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국민에게 누누이 약속했다. 별다른 추가 부담 없이 복지 혜택을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대로라면 참 착한 정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해 당선의 1등 공신이며 착한 정부의 기본인 복지 공약이 구체화 직전 단계인 현재까지도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과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국가 보장’이란 두 가지 주요 공약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
진통의 핵심은 돈 문제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기존 예산에다 적어도 매년 27조원씩 5년간 135조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반면 지난해 세수(稅收)가 목표에 미달한 데다 올해도 2%대 저성장이 예상되는 터여서 증세나 국채 발행 등 비상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경우 이런 막대한 재원조달은 요원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시작도 안 한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의 대원칙을 허물자는 주장까지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세금을 더 거둬 복지를 강화하자는 쪽과 공약 자체를 축소해야 한다는 세력이 마치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주된 흐름처럼 여론을 주도해 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증세론과 공약 축소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선행 수순으로 동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출 조정 60%, 세수 확대 40%만으로 최소 13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 보듯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기 힘들다 해도 마땅히 추진해야 할 방안임에 틀림없다. 우선 ‘증세 없는 복지’란 공약을 최대한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해도 안되면 그때 적절한 과정을 거쳐 수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7번방의 선물’은 착함에 독함이 가세하면서 영화의 맛이 더 살아났다. 고아가 된 용구의 어린 딸 예승은 15년 뒤 사법연수원생으로 자라 모의국민참여재판에서 강압수사 등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는 모습이 영화의 앞뒤에 수미쌍관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31일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에 따라 지방정부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시·도지사의 우려에 중앙정부가 세수 감소분을 채워주겠다고 말했다. 6개월 감면 연장 시 1조4500억원 가량을 재정에서 보전해야 한다. 0~5세 무상보육 확대로 인한 지방 재정 약화도 책임지기로 했다. 나라의 금고 사정이 빡빡한 점을 감안하면 너무 화통한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든다.
박 당선인은 10여일 뒤면 대통령에 취임한다. 독한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착하기 위해 독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비과세나 감면 혜택을 축소하는 것만 해도 여간 모질지 않고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원을 확보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예기(禮記) 단궁하편(檀弓下編)에는 공자의 일화가 담겨있다. 세 개의 허술한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에게 사연을 물은 즉, 시아버지, 남편, 아들 모두 호랑이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공자가 이곳을 떠날 것을 권하자 여인은 “여기서 사는 것이 차라리 괜찮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이를 들은 공자가 ‘호랑이보다 가혹한 세금이 더 무섭다(苛政猛於虎)’고 개탄했다고 한다.
사실 박 당선인이 공약처럼 증세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은 세금 폭탄을 맞는듯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비과세나 감면 혜택 축소,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도 사실 증세나 다름없다. 게다가 봉급생활자 같은 평범한 사람도 알게 모르게 이런 혜택을 누려왔다. 따라서 납득할만한 원칙과 명분이 꼭 있어야 한다. 독한 정부와 나쁜 정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