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 과장급 공무원 A씨의 말이다. 6개 정부 부처(국무총리실·기획재정부·농식품부·공정거래위원회·국토해양부·환경부) 이전으로 세종청사가 출범한 지 9일로 한달이 됐지만 현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원성은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비단 A씨 뿐만이 아니다. 식사자리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세종시 근무자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세종시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한 원성이 높다.
공무원들은 세종청사를 ‘거대한 감옥’에 비유한다. 환경이 미비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자유로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편의시설은 고사하고 먹을 곳이나 휴식을 취할 곳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어서 출퇴근 외에는 할 일이 없다. 퇴근 시 이용하는 통근버스를 ‘출소차량이라고 부르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간다.
세종시 근무자들의 불편은 ‘먹을 곳’이나 ‘쉴 곳’같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조차 해결 안된다는 데 있다. 우선 식당이 없다. 세종시에 식당이 거의 없는 데다 청사 인근은 공사현장이어서 함바식당이라 볼리는 현장식당 뿐이다.
기획재정부 한 공무원은 “근처 함바식당을 이용해 봤는데 구내식당보다 맛은 있지만 위생이 좋지 않아 이용을 꺼리게 된다”며 “구내식당 식단은 3500원짜리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을 정도지만 마땅히 먹을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이용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점심시간에 대전까지 왕복 50km를 오가는 근무자들도 적지 않다. 거리상으로 보면 ‘여행’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길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이다.
열악한 교통여건도 공무원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있다. 서울의 교통지옥과는 또 다른 개념의 ‘교통지옥’이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세종시로 일터를 옮긴 공무원 약 5500명 가운데 약 4000명 가량이 세종시가 아닌 인근에서 살거나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교통문제는 주거문제와 직결된다.
통근버스 탑승은 또 다른 전쟁이다. 제시간에 버스에 타려고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20여분 줄을 서서 탑승한다. 좋은 자리 앞에서는 실·국장이니 주무관이니 하는 직급도 없어진다. 시간을 놓치면 한 시간 뒤에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다.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사실상 없다. 마련된 간선급행버스체계(BRT)는 대중교통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오송역에서 세종시 종합청사까지 운행하는 BRT는 고장이 잦아 아예 몇 명씩 인원을 맞춰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송역에서 세종청사까지 택시요금은 약 2만2000원 정도다. 교통비가 부담스럽다.
문제는 야근하는 공무원들은 퇴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없어 콜택시를 부르거나 아예 차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세종청사 인근 도로는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차를 몰기에도 잦은 안개와 도로정비가 제대로 안돼 한 달 동안 세종청사 인근 도로에서 여러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공무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중앙부처 공무원노조 위원장들이 지난 7일 “정부는 생활 여건과 근무 여건이 부실한 상황에서 공무원을 서둘러 세종청사로 내몬 데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 달라”며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다. 청사관리소 측은 “우선 필요한 편의시설과 종합 매장이 3월 중에 문을 열 예정이니 참고 생활할 수 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내려왔어야 한다. 본인들이 이런 생활을 겪어보면 같은 상황을 방치하겠느냐”는 원성도 자자하다. 공정거래위원회 과장급 간부 B씨는 “사실 행정안전부야말로 내려와야 하는 정부 부처이지 않느냐”며 “감시하고 제재해야 할 기업의 절반은 서울에 있는데 공정위는 내려오고 세종청사를 직접 챙겨야 할 행정안전부가 광화문에 남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