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긴 것은 ‘박근혜표 복지예산’ 확대에 대한 재정확보 방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예산안은 잠정 합의에 이르렀고, 예정대로라면 연말 오후 2시 열린 본회의에서 처리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여야 합의로 원안 처리키로 한 제주해군기지 사업을 물고 늘어지면서 예산안 늑장 처리를 주도했다. 본회의가 열리기 전날부터 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민주당은 본회의가 예정된 당일 시민단체를 앞세워 제주해군기지 사업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본회의는 연기됐고, 여야 원내대표단은 이날 오후 7시 30분 △군항 중심 운영 우려 불식 △15만톤급 크루즈선박 입항 가능성 검증 △항만관제권, 항만시설 유지·보수 비용 등에 관한 협정서 체결 등 3가지 부대의견을 달아 원안 통과에 합의했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합의를 깨고 또 다시 문제 제기를 하면서 결국 해를 넘겨 새벽까지 4차례나 협상을 벌인 끝에 ‘3가지 부대의견을 70일 내에 이행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한 후 예산을 집행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결론내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이 문제와 별개로 예산안 자체도 ‘졸속’ ‘잇속’ 심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여야 의원들은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 황당하게도 이를 ‘쪽지 예산’으로 불리는 민원성 지역사업 예산으로 사실상 ‘전용’하는 등 구태를 드러냈다. 국방부 예산 3280억원을 깎고, 줄이겠다던 SOC 예산은 3670억원이나 순증한 것이다. 안보보다 중요한 게 자기 밥그릇 챙기는 거였다.
‘힘이 센’ 의원들일수록 예산도 많이 챙겼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지역구(인천 연수)가 있는 인천의 경우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건립예산 615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송도 희소금속산업 육성 인프라 구축과 송도 컨벤시아 2단계 조성에도 각각 20억원이 배정됐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의 지역구(대구 수성)가 있는 대구의 예산도 △수성의료지구사업비 182억원 증액 △대구순환고속도로 사업비 30억원 신규 책정 △대구테크노폴리스산단 진입도로 건설 40억원 증액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 운영비 12억원 증액 등 크게 늘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 예산은 F1 경주대회 경비 증액 등 200억원이나 늘어났고, 같은 당 박기춘 원내대표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 예산은 고용지원센터 건립 지원 등으로 1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한편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운 ‘의원연금 폐지’ 대선공약도 공염불에 그쳤다.
이번에 통과된 예산안에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지난해와 동일한 128억2600만원의 예산이 그대로 잡혔다. 여기에는 만 65세 이상의 전직 의원들에게 월 120만원씩 지급하는 평생연금이 포함돼 있다. 일반인이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기 위해선 월 30만원씩 30년을 불입해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여야가 각각 공약 이행을 위해 국회의원 연금 개선 법안을 내놨지만 제대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