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금융권도 변화의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대출은 대기업에 편중됐다는 지적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금융기관은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이로 인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원론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권에도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자’라는 행동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박 당선인 기조에 맞춰 오래 거래해 믿을 만한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맞았을 때 특단의 우대 혜택을 줘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시혜적, 온정적 접근이 아닌 과거 중소기업 사이에서 지적됐던 “인정이 없다. 이익만 생각한다”는 비판을 교훈 삼아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중소기업, 지금 필요한 것은 현금 = 지난해 연말 은행권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에서 파격을 시도하는 상품 출시가 예고됐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기업은행.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지난달 27일 중소기업 최고 대출 금리를 한자릿수인 9.5%로 인하했다. 현재 타 은행권의 중소기업 최고 금리가 15~1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해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조 행장은 몇 차례 공식석상에서 “임기 중에 최고 대출 금리를 한 자릿수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임기 1년을 남겨 놓고 한 자릿수 최고 대출 금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금융위원회를 설득,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 한 자릿수는 기업은행 입장에선 적잖은 출혈을 예고한다. 올해 경영에서 1000억원 가량 순익 감소가 불가피할 정도다. 현행 최고 금리가 10.5%에서 9.6%로 0.9%포인트 낮아지는 만큼의 이자 순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른 시중은행들 역시 중소기업의 현금 흐름에 도움을 주고 은행과 동반성장하는 다양한 지원책에 골몰하고 있다. 우선 추가적인 중소기업 대출 금리 인하 폭을 놓고 막판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내려갔지만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중소기업 자금난을 해소하자는 것이 은행권의 생각이다.
지난해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하 소식이 잇따랐다. 중소기업 대출이 주춤했던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0.7%포인트 인하하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중소기업을 위해 출시했던 3%대 특별 저금리 대출상품이 전액 소진돼 규모를 2조원 더 늘리고 기한도 오는 2월 말까지 연장했다. 상품이 조기 소진된데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중소기업들의 요청이 많았던 탓이다.
◇금융당국 “금융기관 중소기업 지원 적극 나서야" = 박 당선인은 중기중앙회와 소상공인단체와의 만남에서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중심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고환율·저금리 정책에 기반을 둔 대기업 성장정책에 치중했지만 당초 기대한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조직개편이 불가피한 금융당국 역시 박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해 금융권에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 주문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소외 받아왔던 금융권의 대출·카드 수수료 등 대표적인 불공정 현상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연말 중소기업 금융에 대한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중소기업의 업종별, 기업 규모별, 내수·수출별, 지역별, 용도별로 세분화해 중소기업의 금융이용 실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고승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대출·보증 등 중소기업의 자금이용 경로, 자금신청 거부 현황 등과 함께 중소기업의 전반적인 자금사정과 수요를 들여다볼 계획”이라며 “기업경영과 재무상황, 대출규모·연체율·금리 등 금융권의 자금지원 동향도 점검에 들어가 개선할 점이 발견되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가는 것은 경기 둔화로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중소기업 지원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도 함께한다. 이에 은행권의 중소기업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고 중소기업 대출 지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