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경쟁할 때 나의 능력을 내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데다 검증 자체가 객관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하며 능력을 인정받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다.
사람들의 말초신경은 누가 잘했다는 것보다는 잘못했다는 것에 더 반응한다.
정치인들이 네거티브에 열을 올리는 것도 비용·효율적인 면에서 ‘남는 장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네거티브는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인 참모로 유명한 애나 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네거티브에 대해 “씁쓸하지만 확실히 먹힌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지난 11월 대선을 치르면서 사상 유례없는 네거티브전이 펼쳐졌다.
특히 올해는 큰 자금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단체인 슈퍼팩이 참여하면서 네거티브가 확산했다.
오바마 캠프는 밋 롬니 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이익만을 좇는 악덕 기업 사냥꾼으로 묘사했다.
어찌보면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의 전 대표였던 롬니에게 이익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당연한 일인데.
국민들은 롬니에 대해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아닌 악덕 기업인이라는 꼬리표에 더 관심을 가졌다.
대선을 두달여 앞두고 공개된 ‘47%’ 발언을 오바마 캠프가 놓칠리 없었다.
47% 발언은 오바마 캠프를 거치면서 롬니를 ‘중산층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몰상식한 정치인’으로 전락시켰다.
오바마는 대선을 3일 남겨두고 위스콘신 유세에서 롬니를 정치인이 아닌 ‘훌륭한 세일즈맨’으로 폄하했다.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스트인 그로버 노퀴스트는 오바마가 롬니를 ‘바보천치(poopy-head)’로 만들어 선거에서 이겼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광고 역시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대선 광고에 수십억달러가 투입됐지만 자신의 공약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미디어 분석 회사 CMAG가 미국 대선의 TV 광고를 분석한 결과, 오바마 측의 정책·비전을 홍보하는 포지티브 광고는 전체의 14.4%에 머물렀다. 나머지는 온통 상대방을 비난하는 네거티브 광고였다.
롬니 역시 포지티브 20.4%, 네거티브 79.2%로 흑색선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측의 네거티브 광고 비중이 62.9%,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 측이 75.9%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 선거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임정치센터(CRP)가 집계한 미국의 올해 대선 자금은 26억달러로 추정된다. 이중 상당 부분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네거티브 전략에 사용됐다.
한국의 대선도 좀처럼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고 네거티브 논란이 거셌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선과 유사했다.
오바마·롬니와 같이 박근혜 당선인과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격전을 치렀다.
미국에서는 막판에 오바마 측의 네거티브가 더욱 심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결국 승리했다는 사실은 네거티브의 효과를 부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네거티브는 그러나 결국 흑색선전일 뿐이다. 당장 승부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들을 현혹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네거티브 전략에 눈이 먼저 가고 입맛이 당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수준은 이전과는 다르다.
근거없는 비방과 공세는 오히려 본인의 표만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도 결국 막판으로 흘러가면서 네거티브라는 사탕을 버리지는 못했다.
자신의 공약과 약속은 중요하지 않았다. 각 후보의 유세는 상대방이 얼마나 능력없는 사람인지를 일러바치는 행사였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네거티브가 판치는 세상이기는 하다.
정치라는 것이 나라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추잡스러운 면이 있게 마련이지만 차기 대선에서는 부디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한 후보들을 만났으면 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