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검사와 여성 피의자의 부적절한 성관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법무ㆍ검찰 수뇌부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사인 것이 부끄럽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지휘부 퇴진을 놓고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거액수뢰 혐의로 검찰간부가 구속된 지 사흘 만에 터진 이번 사건의 여파로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23일 오전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권재진 법무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이 일정한 시점에 입장 표명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청사 안팎에서 발생한 검사와 피의자 간의 성관계 파문과 관련, 석 지검장은 이날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서울동부지검에서 발생한 불미의 사태에 관해 청의 관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검사 실무수습을 위해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된 A(30) 검사는 이달 10일 검사 집무실로 피의자인 40대 여성 B씨를 불러 조사하던 중 유사 성행위를 하고 사흘 뒤 인근 모텔에서 B씨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가 9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직후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수뇌부 책임론이 대두하고 있다.
한 총장은 그러나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퇴설에 대해 묻자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채동욱 대검 차장 역시 검찰총장의 거취표명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말했다.
권 장관은 김 검사의 구속과 검사 성추문 사건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총장은 지난 19일 김광준 검사 구속 직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도 당장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거취를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순방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은 검사 비리 사건을 보고받고 조속한 감찰과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검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권 말기인데다 대선을 앞둔 시점임을 고려하면 검찰 수뇌부가 사의표명을 해도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참모는 "선거 관련 사범의 지휘는 검찰이 하게 돼 있다"면서 "당장 검찰총장이 사퇴할 경우 엄정한 대선관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총장 등 지휘부의 진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도 논쟁이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조직 개혁과 관련한 내부 의견을 듣고자 검찰 내부통신망에 개설한 익명게시판에는 23일에만 지휘부의 진퇴와 관련해 7건의 글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4건은 지휘부의 사퇴를 촉구한 반면, 3건은 지휘부 퇴진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지휘부 퇴진을 요구하는 쪽은 '용기와 염치 있는 분의 사퇴를 요구합니다'는 등의 글을 올렸으며, 퇴진에 반대하는 쪽은 '총장님의 사퇴에 반대합니다' 등의 글을 게시했다.
또 내부통신망에는 '국민께 머리숙여 사죄드린다. 국민이 부여한 깨끗하고 정의로운 검찰이라는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채웠다', '조직에 회의가 느껴진다', '우리는 그렇게 깨끗하고 정의롭지 않았다', '검사인 것이 부끄럽고 숨이 멎을 것 같다'는 등 자괴감과 한탄이 뒤섞인 글이 온종일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은 한마디로 쑥대밭이 된 듯한 분위기다.
일선 검사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일손을 잡지 못한 채 사태 추이를 지켜봤으며, 부장검사급 중간간부들은 내내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평검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 등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지만 조직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일단 해당 검찰청의 지휘책임을 맡는 지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수뇌부 유고 사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지검장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원포인트 인사가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대검 부장급 간부를 직무대리로 임명해 사태 수습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