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크다. 미국 시장에서의 승자는 전 세계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 받을 수 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품질과 이미지 인정 차원으로 보면 여전히 미국 시장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세계 자동차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다 보니 그만큼 견제가 잦다. 양 부회장이 미국의 연비 사태를 ‘경쟁사들의 견제’로 본 것에 이 같은 시각이 녹아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5년간 미국 시장에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 2007년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77만2482대를 팔았지만 2011년에는 113만1183대를 팔아 46.4% 성장했다. 같은 기간 시장점유율은 4.8%에서 8.9%로 뛰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디트로이트의 몰락’이란 서막이 열리면서 현대차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 현대차가 미국의 연비 규정을 어기지 않았음에도 최근의 사태가 벌어진 것에 딴죽 걸기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정치와 연관도 깊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미국 대통령 선거 5일 전에 현대차 연비의 과장을 발표했다.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에 차를 파는 만큼 미국의 차를 사야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같은 연결 선상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연비 문제에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 정국에서 자동차 노조의 지지, 그리고 미국 산업의 보호주의 강화와 맥이 닿아있다는 얘기다.
현대차에 소송을 제기한 미국 컨슈머 워치독 역시 보수색이 짙은 소비자단체다. 워치독은 미국인의 세금이 많이 들어간 제너럴모터스(GM)의 차를 사는게 ‘미국을 위한 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국 제품을 이용해야 한다는 국수주의다. 이 단체는 현대차의 연비 문제를 지난 1월부터 제기해왔다. 또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의 연비 소송으로 2000여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반면 워치독은 자국 브랜드에는 관대하다. 과거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에 대한 연료 효율 문제가 잇따라 제기됐을 당시 워치독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도요타는 2007년 미국시장에서 262만826대를 팔았지만 2011년에는 164만4661대로 줄어 판매량이 36.5% 감소했다. 도요타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2009년 17.0%에서 2010년 초 대량 리콜 사태를 겪은 뒤 하락세로 돌았다. 2012년 1~10월에는 시장점유율 14.4%를 기록했다. 도요타는 지난 14일 핸들과 워터펌프 결함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포함해 277만대의 차량을 리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도요타가 한 사건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다. 현대차가 이번 연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이유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미국의 연비 사태를 계기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과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