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도 여름 동안 음악 못들었으니 삼겹살에 소주도 좋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음악 좀 들으면서 귀 좀 씻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짐 챙겨서 마포로 넘어와라. 고기 다 타겠다.”
겨울이다!! 누군가는 곧 내릴 눈에 설레이며 스키장비를 만지작거리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어느 해보다 추울 올 겨울에 걱정이 앞서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으로 음악듣기 좋은 계절이다.
집에는 “분리수거하러 나갔는데 누군가 오래되서 버린 고장난 앰프가 있길래 황학동 가서 2만원 주고 고쳤다”고 하고, 놀러온 친구들에게는 “일본 전자제품이 가장 잘나가던 시기가 80년대잖아. 서양 브랜드들 따라 잡으려고 작정하고 최고급 부품만 써서 오히려 유럽제품보다 훨씬 좋은 소리가 난다구!” 하고 자랑하는 일제 L社 앰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열기는 여름날 속옷까지 젖어버리게 만들어 버린다.
어디 그뿐이랴? 다들 열어놓은 창문 덕에 볼륨을 높이면 바로 쏟아질 윗집 아랫집의 눈총에 여름은 음악애호가에게는 재앙의 계절이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방에 불을 안 떼도 오디오덕에 따뜻한 기운까지 느끼게 되니 오디오의 볼륨을 시원하게 올릴 수 있는 계절이 왔다.
다시...겨울이다!!
여름 내내 목말랐던 관현악곡부터 차근차근 들어가며 마르지 않는 음악의 샘으로 그동안 쌓였던 귀의 때를 씻으니, 요순시절 허유가 이런 마음으로 귀를 씻었으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망년회 시즌이 오기 전에 한 곡이라도 더 들으려는 마음에 퇴근길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오늘은 누구의 음반을 들을까? 바그너를 들을까, 브루크너를 들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들어볼까 하는 호사스러운 고민을 한다.
그뿐이랴? 내 나름의 호사로 구입한 흔들의자에 앉아 소주잔을 홀짝이며 고개를 살랑살랑, 폼 잡으며 책도 좀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 일어나면 아직도 마를린 혼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이 순간 극락이 따로 없고, 꽉 찬듯한 삶에 행복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