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옷값 때문에 SPA나 아웃렛, 홈쇼핑, 인터넷을 이용하는 이모(32)씨는 더이상 백화점에 가질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절반이나 그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옷을 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더이상 패션의 유행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합리적인 소비를 이끈 것이다.
김씨와 이씨의 의류 소비는 무엇이 다를까. 또 의류 유통에 어떤 비밀이 있길래 같은 옷도 가격이 다를까.
브랜드 의류가 비싼 이유는 마케팅 비용이나 비싼 백화점 수수료 뿐만 아니라 재고부담 비용까지 가격에 전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산업연구원은 이같은 분석내용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일명‘의류 재고시장 현황과 시사점’에 대한 보고서다.
브랜드 의류는 백화점이나 대리점 등 1차 유통시장에서 내수 출하량의 60~70%가 팔린다. 나머지는 아웃렛이나 홈쇼핑, 인터넷쇼핑, 제3국 수출, 땡처리, 소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것이다.
1차 유통시장에서도 출하량의 30~40%는 세일이나 기획전을 통해 20~30%의 할인을 거친다. 결국 정상가로 판매되는 옷은 전체 물량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0벌을 만들면 3벌만 정상가로 팔리고 나머지는 모두 할인 가격으로 처리되는 셈이다.
1차 유통에서 판매되지 못한 옷은 아웃렛이나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을 거치며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9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처리된다. 같은 옷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통채널을 바꿔가며 할인율을 높여가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산업연구원 박훈 박사는 “의류업체들이 재고 부담비용을 제품가격에 전가하는 것이 의류가격이 높은 원인”이라며 “재고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물류창고와 관리인력 등 많은 유지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씨는 왜 백화점에 가지 않는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옷 값이 너무 비싸서다. 때문에 백화점 정기세일이나 아웃렛에서의 구매비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패션업체들은 자구책으로 재고 처리를 위한 자체 아웃렛을 운영하기도 한다. 재고에 따른 옷값 변화를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제일모직이나 LG패션, 코오롱 등 대기업 브랜드와 한섬, 세정 등 중견 브랜드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자체 팩토리 아웃렛을 개설한다. 흔히 보는 제일모직 아웃렛이나 세정 아웃렛 등이 그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체 팩토리 아웃렛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품질 수준도 보장되고 효과적인 재고처리로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체 팩토리 아웃렛이 없는 중소업체들은 마리오아웃렛이나 오랜지팩토리 등 백화점형 아웃렛 몰에서 재고품을 위탁판매한다. 당연히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재고처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웃렛이라고 하더라도 유명 브랜드는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아웃도어도 마찬가지다.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상설 복합매장에 가보면 신상품과 재고상품을 나눠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상설 복합매장이 함께 있으면 역시 재고처리가 원활하다”면서 “특히 재고를 대리점이 떠안을 경우 부담이 생겨 더 싸게 파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했다.
불황일 때는 재고율이 더 높다. 최근 콧대 높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무게 단위로 옷을 판 것도 이 때문이다.
AK플라자는 지난 7월 ‘킬로패션 대전’을 열고 백화점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의류를 저울로 달아 판매했다. 판매가격도 g당 30원이며, 1인당 구매 한도를 최대 5㎏까지 열어뒀다.
행사에는 티셔츠, 카디건, 블라우스, 스커트 등 여성의류 3만여점이 선봬 거의 다 판매됐다. 티셔츠의 무게가 보통 70∼120g으로 봤을 때 평균 100g짜리 티셔츠를 샀을 경우 가격은 3000원이었다.
롯데마트는 역시 지난 4월 비슷한 행사를 열어 티셔츠 50만장가량을 팔아치웠다.
대형마트 패션 담당 고위 임원은 “불황이 깊어지면서 브랜드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명품이나 상위 브랜드는 여전히 잘 팔리는 반면 중위권 브랜드의 판매율이 저조해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