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서‘전문의’가 진료…법대로 될까?

입력 2012-07-31 10:02 수정 2012-07-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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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비상진료체계 내달 5일부터 시행…제도 곳곳 맹점, 현장 혼선 불가피

"인턴이 담당과 전문의를 불러내는 것은 사병이 장교를 호출하는 꼴이다."

당장 다음달 5일부터 개정된 응급의료법이 전국 458개 응급의료기관에 적용된다. 개정법(응급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은 수련 과정에 있는 레지던트(전공의) 를 병원 응급실 당직에서 제외하고, 대신 전문의들이 비상호출인‘온 콜’(비상호출체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응급의학과 당직의가 환자를 받아 전문의의 협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병원 밖에 있는 의사를 호출해 진료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병원에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해당 당직전문의는 면허정치 처분을 받게된다. 하지만 시행 닷새를 앞두고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홍보가 부족한 상황이어 일선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80%의 비응급환자는 해당 안 돼=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기존에 인턴→전공의→전문의를 걸치던 응급실 전달체계를 단축해 환자가 전문의의 빠르고 정확한 진료를 받도록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제도를 뜯어보면 곳곳에 맹점이 있다. 우선, 응급실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가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 이사장은“비상진료체계는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응급환자’를 위한 규정”이라며“응급실 내원환자의 70~80%에 해당하는 비응급환자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은‘질병, 분만, 각종 사고 등으로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응급환자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응급실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응급환자는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

개정안은 또 당직전문의 명단을 응급실 내부에 게시토록 하면서 응급환자나 환자의 보호자는 전문의 진료를 요청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응급실을 찾는 모든 환자가 스스로를 응급환자로 생각한다”며 “당직전문의 필요 여부를 응급실 근무의사가 판단하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기존과 달라질 것 없어”= 문제는 또 있다. 당초 복지부는 개정안 취지를 설명하며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보기 때문에 질 높은 응급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의 의사들은 인턴과 전공의들이 응급환자를 보던 기존의 시스템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 이사장은“이번 개정안을 보면 당직전문의를 둬야하는 진료과에 응급의학과는 빠져있다”며“응급실 운영은 현재와 똑같이 인턴, 전공의, 전문의 시스템으로 운영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응급의학전문의가 아닌 인턴이나 전공의들이 환자를 진료하다 다른과에 협조를 요청할 경우 발생한다. 협진 서열상 다른 과의 당직전문의에게 직접적으로 콜을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인턴이나 전공의가 직접적으로 타과 전문의에게 콜을 하는 것은 사병이 장교를 호출하는 것과 같은 꼴”이라며“현실적으로 타과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에게 콜을 하게 되는 현실을 무시한 채 마치 전문의가 상주하는 것처럼 언론에 알려져 시행 초기에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사무국장은“이같은 진료관행으로 인해 최소한 필수적인 과목에라도 전문의가 상근근무할 것을 복지부 측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복지부는 향후 응급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니터링 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제도에 대한 책임있는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365일 응급실 당직서느니 문 닫겠다”= 제도 시행 초기 진료현장의 혼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소병원 및 지역의료기관들은 차라리 응급실 문을 닫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병문백 전 정책이사는“지방 중소병원의 경우 인력난과 경제난이 겹쳐 차라리 응급실 문을 닫겠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응급실에 상주해야 하는 인력은 권역응급센터의 경우 응급의학전문의 4인을 포함한 6인 이상의 전문의, 지역응급의료센터는 2인 이상의 전담 전문의, 지역응급의료기관의 경우 2인 이상의 전담 의사로 규정하고 있다.

지방의 응급의료기관은 대부분 100~150병상으로 1개 진료과에 전문의 1명이 있는 곳이 많아 당장 개정 응급의료법이 시행되면 모든 의사가 이틀마나 당직을 서거나 365일 당직의로 일해야 하는 실정이다.

응급실 운영비용도 문제다. 현재 응급실 진료 수가는 원가의 68.5% 수준이다.

대한응급의료학회 유인술 이사장은 “전문의들에게 응급실 진료를 전담시키면 자연히 비용이 늘어나 지방 응급기관은 응급환자를 많이 볼수록 손해가 커지게 된다”며“응급의료기관을 유지하는 것이 비상진료체계를 갖추지 않고 반납한는 것보다 이익이 되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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