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 경영을 일컬을 때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언제나 한발 앞서 나갔다. 경영수업과 성과에 대한 평가가 언제나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룹 안팎은 물론 재계 전반에 걸쳐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이견은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는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한 리더십 경영,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구도에도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이었던 이유는 또 있다. 먼저 치열한 형제간 다툼에서 자유롭다. 정성이, 명이, 윤이 자매가 각각 계열사에서 보이지 않는 행보를 이어온 것과 달리 정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제민주화 요구는 현대차그룹에게 적잖은 파장을 불러온다.
정치권은 새로운 ‘순환출자금지’를 전면에 앞세워 재벌개혁을 강조한다. 재벌이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식 확장에 나섰고,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 영역을 침범당하며 경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는 주장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63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15개 그룹이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롯데·한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권이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직접적인 사업영역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제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신규 출자금지는 물론 기존의 순환출자구조 해소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파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지녔다. 때문에 국회차원의 재벌지배구조개혁내용이 현대차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 시나리오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모비스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도 사실상 갖게 된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에게 순환출자구조의 유지는 승계구도 최대 관건이다.
현재 상황에서 순환출자구조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정 부회장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만으로는 그룹 전반을 장악하는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권은 순환출자금지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에 반해 야당은 결국 3년 내에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과 재계 안팎에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해 재벌들의 순환출자구조 고리를 끊는 내용이 경제정책 공약으로 등장할 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순환출자구조가 전면 금지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대변화를 맞게된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현대차그룹 전체가 아닌 일부 계열사에 국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현재 글로비스(31.9%)를 제외하곤 대부분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25.6%)를 비롯해 △이노션(40%) △현대오토에버(20.1%) △현대위스코(57.9%)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비상장계열사들의 상장을 통한 차익실현재원을 바탕으로 모비스 지분을 확대하는 것이 현재로써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내세운 순환출자가 금지됐을 경우, 막판으로 몰린 정몽구 회장 부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는 사실상 좌절되고 승계구도 역시 무너진다.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취지를 살려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변형된 출자구조인 순환출자까지 전면 금지한다면 현대차그룹은 기아차가 가지고 있는 모비스 지분(16.88%)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
결국 순환출자구조의 전면금지 여부가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몽구 회장 부자의 이목이 19대 국회와 연말 대선 정국에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