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요,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불도저’ 이미지는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서울시장 등을 지내며 보인 추진력에서 기인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보’ 이미지는 선거에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부산에 출사표를 던지던 때부터 서서히 굳혀져 갔다.
올 연말 대선에 나서는 여야 주자들 역시 각각 ‘브랜드화’된 이미지가 있다. 다만 이들의 이미지엔 서로 다른 평가들이 상존한다. 이미지는 하나인데 여기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는 얘기다.
유력 대권주자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호평을 받는 동시에 융통성이 떨어지고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야권의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참신한 이미지가 강점이지만 동시에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 대선주자들의 이미지에 대한 이중적 평가들을 살펴봤다.
◇ ‘원칙과 신뢰’ 박근혜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각인돼 있다. 박 전 위원장은 2010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놓고 원안을 고수, 이명박 정부는 물론 당내 주류를 이뤘던 친이명박계와도 강하게 대립했다. 자신이 당 대표였던 시절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신념을 갖고 추진했던 세종시 문제에 있어 원칙을 지켜냈던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다시 이끌었던 새누리당은 이 덕분에 지난 4.11 총선 충청지역에서 대약진, 충북 8곳 중 5곳, 충남 10곳 중 4곳을 얻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국면에서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이 정부가 사업성 문제로 건설 백지화 결정을 내렸지만 박 전 위원장은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
이 때문에 박 전 위원장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신뢰도 평가에서 2009년부터 줄곧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박 전 위원장의 ‘원칙과 신뢰’는 때로 ‘융통성 없음’, ‘불통’의 모습으로 공격당하기도 한다.
박 전 위원장은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거셌던 때에 당시 정몽준 대표로부터 중국의 ‘미생지신’(미생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폭우 속에서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익사했다는 내용)이라는 고사 속 미생에 비유당했다. 동남권신공항을 두고도 공약을 내건 당사자인 이 대통령마저 사업성이 없어 폐기한 ‘죽은 정책’을 원칙만 앞세워 살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당내 ‘뜨거운 감자’인 대선후보 경선룰 변경 논란도 마찬가지다. 비(非박근혜)계 주자들은 5년 전에 짜인 경선룰이 현 상황에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픈프라이머리로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지만 박 전 위원장은 “선수가 룰에 맞춰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거부하고 있다. 비박 김문수 지사는 그러한 박 전 위원장의 태도에 “불통과 독선, 오만함의 발로”라며 독설을 뿜기도 했다.
◇ ‘깐깐함과 청빈함’ 김문수 = 김 지사는 힘 있는 말투, 굳은 얼굴 표정 등 외향적 특징에서부터 ‘깐깐’한 이미지가 풍긴다. 여기에 작업용 점퍼가 잘 어울리는 그는 ‘청빈’한 서민 이미지도 브랜드로 갖고 있다.
김 지사는 스스로 “어릴 적에 밥을 실컷 먹어보고, 설날에 양말 한 켤레 얻어 신는 게 꿈이었다”고 자주 언급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등에 헌신했던 청년 시절을 거쳐 3선 국회의원을 지낼 때까지도 그는 청빈한 이미지를 잃지 않았다. 김 지사는 도지사직에 오른 뒤 2009년 연초부터 매달 한번 꼴로 택시운전대를 잡고 현장에서 민심을 청취, 서민정치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울러 그는 국회의원 시절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등 야당 저격수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고, 도지사 시절 국정감사에 피감기관장으로 불려나와서도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등 깐깐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그의 깐깐함은 ‘119 전화’ 사건에서 권위적인 모습으로 역전되기도 했다. 지난해 한 노인요양원을 방문했다가 암환자 이송체계 등을 문의하기 위해 도내 긴급비상전화 119에 전화를 걸었던 김 지사는 전화를 받은 소방관을 향해 “나 도지사인데…”를 연발했고 관등성명을 댈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전화응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해당 소방관을 전보발령 조치시켰다가 결국 사과하고 원직 복귀시켰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서민을 자임하지만 ‘권력형 장난전화’를 할 정도로 권위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 ‘글로벌 무대 누빈 신사’ 정몽준 = 정몽준 전 대표는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균형 잡힌 몸매에 훤칠한 키, 수려한 외모로 ‘신사’다운 풍채를 자랑한다.
정 전 대표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첫 출사표를 던졌던 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여당으로 입후보할 것을 종용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무소속을 택했다고 한다. 이후 울산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는 동안에도 무소속을 유지, 정략적 다툼에 휘말리지 않고 젠틀하게 처신했다는 평가다. 그는 이러한 신사 이미지를 적극 활용,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나눔의 성장’을 강조한 사회·경제분야 공약 ‘키다리 아저씨의 꿈’이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또 영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유학했으며, FIFA 부회장으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를 성공시킨 주역으로서 글로벌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도 듣는다.
다만 그가 ‘글로벌한 무대를 누빈 신사’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데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인 현대가 출신이란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가 2008년 라디오에 출연해 버스 기본요금을 묻는 질문에 “70원 아닌가요”라고 답했던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면서 그의 신사 이미지에 ‘부잣집 도련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또한 무소속으로 여야의 정략적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던 점을 두고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란 비판이 따르기도 한다.
◇ ‘옆집 아저씨’ 이재오 = 이재오 의원은 같은 민중당 출신인 김 지사와 마찬가지로 넉넉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력이 있는 등 서민적 이미지가 겹친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하며 “나는 23평 집에 살고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면서 “이 동네 사람들은 나를 옆집 아저씨로 여긴다”고 했다.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 슬로건을 발표, 경제적으로도 권력적으로도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며 옆집 아저씨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통령이 돼도 청와대는 국민에게 개방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자신은 현재 사는 은평구내 23평 아파트에서 출퇴근하겠다는 이색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자임하는 ‘옆집 아저씨’ 이미지는 ‘정권 2인자’ ‘왕의 남자’라는 낙인 속에 묻히기도 한다. 평범한 옆집 아저씨라면 국민권익위원장, 특임장관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겠느냐는 비판이다. 또 정치인에겐 친근한 서민적 이미지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지도자다운 ‘특별함’도 필요한데, 이 의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