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막상 나를 꺼내고 나면 실망하거나 놀라거나 둘 중 하나다. “장롱 속에 이렇게 많은 외화가 있었나?” 내지는 “요거 밖에 없구나”라는 반응이다.
사람들은 장롱 속 나른 들여다 본 뒤 새로 환전을 할려고 은행을 찾는다. 현금을 들고가거나 예금통장이 있는 주거래 은행을 찾아 원화를 외화로 바꾼다. 수고스럽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사람들은 ‘장롱 속 외화 모으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시중은행들은 일주일 만에 1000만달러(115억원·1150원 기준) 이상을 모았다. 실제 장롱 속에 있는 외화는 이보다 몇 갑절이 될 것으로 은행권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나는 좀 더 현명하게 외화를 관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외화예금 통장을 만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럼 환전할 때마다 드는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신한은행의 ‘외화 체인지업 예금’은 환전 수수료를 최대 50% 깍아준다. 미국 달러로 환전 시 50%의 환율 우대를 받으면 1달러당 10원 정도를 아낄 수 있다. 1000달러를 환전할 경우 1만원이 저렴해진다는 얘기다. 신한은행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은행들이 환전 수수료를 우대해주는 외화예금 상품을 가지고 있다. 주거래 은행을 찾기만 하면 외화예금 통장을 만들 수 있다.
외화예금 통장은 수수료 우대 뿐 아니라 여러 서비스도 갖추고 있다. 하나은행의 ‘외화서비스 하나통장’은 해외자동이체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금액을 지정해두면 외화가 자동으로 이체된다. 해외 유학생을 둔 부모나 정기적인 해외송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하다.
이광필 농협 외환업무부 차장은 “해외 출장이나 송금이 잦은 사람이 아니어도 1년에 한두번은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며 “외화예금은 꼭 환율이 급변동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일정액을 운영하는 것이 적은 돈이라도 새는 것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외화를 장기적으로 모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도 갖추고 있다. 우리은행의 ‘해외로 외화적립예금’은 6개월마다 이자를 원금에 합해 복리로 계산하는 6개월 회전식 예금이다. 최장 10년까지 가능하다.
‘막내 딸 하버드 유학자금’,‘부모님 해외관광 효도자금’ 등 고객이 외화예금 이름을 정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모을 수 있다. 금리 우대는 물론 환전과 송금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외화를 장롱 속에 묻어두기보다 통장에 입금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장롱 속 외화를 꺼내면 우리나라의 외화예금이 기업에 치중돼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지난 2월말 기준으로 거주자 외화예금 314억3000만달러 중 기업의 예금은 278억3000만달러로 88.5%에 달했다. 개인 예금은 36억달러로 11.5%에 불과했다. 기업의 외화예금 대부분이 해외결제를 위해 잠시 머무르는 초단기 예금인 것을 고려하면 외화유동성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외화예금에 높은 금리를 바랄 수는 없다. 한 나라의 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기대인플레이션율의 합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3.25%이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대 후반인 것을 고려하면 명목금리는 6%대 중반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기준금리가 0에 가깝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대 중반이다.
만약 은행들이 외화예금에도 원화와 비슷한 금리를 줄 경우 외화 유출입이 심해질 수 있다. 금리 역마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 대부분이 외화에 1% 정도의 금리를 준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은 다양한 상품개발 등을 통해 외화예금의 장기화를 유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선진화된 금융거래 관련 서비스 제공, 해외네트워크 강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외화예금 유치와 관련해서는 “기업들이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은행에 예치하려는 것은 단지 금리역마진이나 환율만의 문제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역금융 서비스, 현지에서의 자금조달 편의성 등 금융거래와 관련된 여러 요인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의 해외 외화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자금관리나 대출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은행들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