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구조조정·감산…최우선 경영목표는 "살아야 한다"

입력 2012-06-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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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주력업종 대응책 부심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영화의 한 대사였던 이 말이 최근 산업계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 심화로 인한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생존’을 최우선순위의 경영목표로 삼고 생존전략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재정위기의 조기 해결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버티기’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 지 재계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자동차·유화, “생산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자동차와 유화업종은 생산량 감소를 통해 불황을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생산을 지속하는 것이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이다.

자동차업계는 작년말부터 이어진 내수침체에 따라 감산을 고려 중이다. 국내 자동차업계 4위인 르노삼성은 지난해 10% 내외였던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

그나마 현대.기아차는 신형 싼타페와 K9 등으로 판매량이 늘었지만 이는 신차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신차를 제외한 나머지 차종의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업계는 내수 불황 타개 대책으로 수출 우선 정책을 내세웠다. 내수보다 해외 시장의 성적이 좋은 만큼, 국내 공장에서 만든 물량을 해외로 돌려 숨통을 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유럽 등 일부 시장의 불확실한 환경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공장을 일시적으로 멈춰, 쌓인 재고를 해결할 계획이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지난해 12월과 올 4월 재고 조절을 위해 가동을 멈췄고, 6월 중에도 3~4일간 일시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석유화학업종은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수요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최근 호남석유화학, LG화학, 여천NCC 등 NCC(나프타 분해설비)업체들은 더욱 울상이다.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소재인 에틸렌 가격이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약 30%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에틸렌 가격은 지난 4월 톤당 1400달러까지 올랐으나 한 달만인 지난달 말 톤당 989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 최저치다.

이에 따라 NCC업체들은 감산을 신중히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을 돌리면 돌릴 수록 수익성이 악화되기 때문. 실제로 여천NCC는 지난달부터 약 10% 감산에 들어갔고, 다른 업체들도 감산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이익이 남아야 하는데 이익이 남지 않는 상황이어서 지금이 한계점”이라며 “지난 2008년에도 가격이 하락해 일부 업체들이 감산했지만 그 때보다 지금은 유럽발 금융위기 등 외부변수들이 더 많아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 ‘조선·철강·해운’ 등 전후방 산업 악영향 ‘도미노’= 조선, 철강, 해운 등 전후방 산업들은 개별 업종의 불황이 다른 업종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강업계는 조선·해운업계의 불황에 중국·일본산 제품의 저가 물량공세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철강재의 재고 누적량은 1900만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일본의 경우 4월 철강재 재고량은 전월 대비 1.7% 증가한 652만1000톤을 기록했다.

공급과잉 현상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지다 보니 국제 철강사들은 생산설비를 중단하고 나섰다. DS제강은 지난달 1일 일부 사업장을 폐쇄했고, 동국제강도 오는 10일부터 포항 제1 후판공장의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특히 중소형 철강사들은 줄도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4월 미주제강은 자금압박과 부도사태로 상장 17년만 에 상장폐지됐다. 관계사인 스테인리스 강관업체 비앤비성원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5일에는 경남 지역 중견 철강업체인 함양제강도 부도 처리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재고물량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업체들의 숫자도 많기 때문에 중소형 철강사들의 경우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장기불황으로 선박발주량이 줄어들고 수주단가가 하락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조선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선박발주량은 전년동기대비 58.9% 줄었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자 국내 조선사들의 1분기 상선 수주잔량 역시 총 6557만7000GT(총톤수)로 2010년보다 18.7% 줄어들었다.

발주가 줄어들면서 선주사들의 가격 후려치기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5월 현재 클락슨 선가지수는 135.3으로, 지난 2008년 4월(13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선가지수가 낮을 수록 컨테이너선 등 상선 시장이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수주를 안 하는 게 남는 것이라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며 “단가를 낮추면 간간히 수주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해운업계도 선진국 재정위기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해상 물동량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호황기에 발주한 선박들이 투입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흑자전환이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수익성이 없는 계열사를 정리하는 등 (올해) 흑자전환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가전업계,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위기 대비”=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계는 조선, 철강 등 다른 주력업종에 비해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편이다. 다만 유럽재정위기의 장기화가 대내외 경영환경에 유럽 위기가 확산되면 경기 위축과 제정 악화에 따른 현지 가전제품 구매 위축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체 매출 가운데 유럽 비중이 각각 20%, 13% 가량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상황을 지켜보며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6~7월 ‘유로2012’와 런던올림픽 등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도 수요가 살아나지 않아 고민이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1분기 유로존의 TV 시장규모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 가량 줄었다. 2분기로 넘어가면서 시장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시장도 상황이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여름철 성수기를 맞은 에어컨도 판매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5월 한달 동안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의 선풍기 매출은 전년 대비 60~250% 늘었다. 반면 에어컨은 50%나 감소했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이 임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예년보다 보름 정도 일정을 앞당겨 오는 25~27일 글로벌 경영전략회를 열고 하반기 경영전략과 위기 대응책을 논의한다. LG그룹도 지난 5일부터 구본무 회장과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전망과 대응방안을 논의하는‘중장기전략 보고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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