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이 구절은 “사람이 굶어 죽을 때 왕이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라고 한다면 사람을 찔러 죽여 놓고 ‘내가 죽인 게 아니라 무기 탓’이라는 것과 같다. 왕이 흉년을 탓하지 않으면 천하의 백성이 따른다”는 내용이다.
지난 1990년 고 김수한 추기경이 서울대 교구장이었을 때 천주교에서 전개한 ‘내 탓이오’ 캠페인과 일맥상통한다. 천주교에서는 ‘내 탓이오’라고 쓰인 스티커 100만장 이상을 배포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으로 일으켰다. 당시 캠페인은 “동료가 저녁 때 술을 자주 먹으면 ‘술꾼’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이 자주 먹으면 ‘회식자리’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 현상을 극복해보자”는 취지였다.
올 5월에는 ‘내 탓이오’와 ‘네 탓이오’가 새삼 떠올랐다. 진보정당에는 이번 5월이 잔인한 달로 기억될 전망이다. 지난 2일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 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을 조사한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비례대표 후보자경선은 선거관리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규정한다”고 밝히면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진산조사 결과 발표로 통진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통진당 내 세력도 교체됐다. 기존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되고, 비당권파는 당권파로 급부상하는 상전벽해가 발생했다.
이어 지난 12일 중앙위가 사태 해결을 위해 위원회를 열었으나 오히려 더욱 복잡해졌다. 이날 일부 당원들이 조준호 전 공동대표를 비롯해 지도자들에게 폭행을 가했고 조 전 공동대표는 목을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조 전 대표는 16일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부정선거 의혹에 당 내 공식행사에서 폭행이 벌어지면서 진보정당을 대하는 시선이 싸늘해졌다. 여기에 이석기·김재연 당선자가 중앙위의 사퇴권고 결정을 무시하고 19대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 버티자 총선에서 지지했던 국민들이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다.
당은 25일까지 이들 당선자들에게 비례대표 사퇴서를 제출할 것으로 요구했다.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명(출당) 조치에 돌입하겠다는 시그널을 여러 번 던졌다. 그러자 이·김 당선자는 주소지를 옮겨 당적을 바꾸는 ‘꼼수’를 선보였다. 이를 본 시민들은 절로 탄성소리를 냈다.
이런 꼼수 덕분에 이·김 당선자는 무난하게 19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못 두렵다. 이·김 당선자가 소속된 국회를 국민들이 더욱 신뢰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두 당선자는 “당원총투표로 거취를 결정한다면 명분 있는 퇴각을 할 수 있으니 출로를 열어 달라”고 주문한다. 이마저도 ‘꼼수’로 비쳐진다. 이·김 당선자가 맹자에서 밝힌 것처럼 ‘흉년’을 탓하지 말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