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컨슈머리포트가 화제다. 미국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소비자 보고서 ‘컨슈머리포트’의 한국판 격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이 매달 소비자의 관심도가 높은 품목 2~3건을 정하고 품질과 가격, 성능 등을 분석해 ‘스마트컨슈머’사이트에 공개한다. 지난 3월 21일 ‘등산화’를 시작으로 ‘변액연금보험’, ‘어린이 음료’에 대한 비교 보고서를 내놨다. 첫번째 비교 품목인 등산화를 사이트에 공개한 직후, 접속자가 폭주해 서버를 2배로 증설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객관적인 정보에 목말라 있던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기업에는 매출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평가 결과의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쌍둥이를 키우는 박유미(33) 씨는 얼마전 어린이 음료에 대한 K-컨슈머리포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트에 갈때마다 아이들에게 사주곤 했던 어린이 음료가 사이다와 콜라 수준으로 당도가 높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당연히 어린이 전용음료라서 믿고 샀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컨슈머리포트가 발표되기 전 해당 음료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결과를 보고 바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등산 마니아인 김태훈(48) 씨는 지난달 등산화를 구입했다. 등산화를 비교한 K-컨슈머리포트 1호가 추천한 제품이었다. 이 씨는 “원래 사려고 했던 제품이 비교 대상 중 하위권에 속해 있어 품질 상위권에 랭크된 제품으로 구매했다”면서 “이제 다른 물건을 사기 전에도 컨슈머리포트를 참고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형 소비자 보고서인 ‘K-컨슈머리포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객관적인 상품 정보에 목말라있던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K-컨슈머리포트 평가결과에 따라 기업의 매출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K-컨슈머리포트는 현재까지 등산화, 변액연금보험, 어린이 음료 등 3가지 상품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두 번째 보고서인 변액연금보험의 경우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4월 금융소비자연맹은 공정위의 의뢰를 받아 시중에 출시된 22개 생명보험사의 변액연금보험 상품 60개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결과 60개 변액연금상품 중 실효수익률이 지난 10년(2002~2011년) 평균 물가상승률 3.19%를 웃돈 상품은 6개에 불과했다.
결과 발표 후 생명보험업계는 가입자 급감과 해약 문의 민원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보험업계는 운용수익률 산출이 잘못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K-컨슈머리포트의 ‘추천상품’으로 선정된 기업의 경우 즉각적인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앞서 발표된 등산화의 경우 K-컨슈머리포트가 추천상품으로 선정한 코오롱스포츠의 ‘레더’와 블랙야크의 ‘레온’은 평소 대비 판매량이 각각 3.5배, 2.5배 증가했다.
코오롱스포츠 측은 “자사의 등산화가 추천상품으로 선정되면서 등산화 매출은 물론 전체 매출도 늘고 있다”면서 “매출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K-컨슈머리포트의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보고서의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첫번째 비교 상품이었던 등산화의 경우 비교 평가 제품 이 5개 업체로 한정돼 있고, 용도가 다른 등산화를 일반용 등산화와 함께 묶어 비교하는 등 평가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도마위에 올랐다.
변액보험상품의 경우 무엇보다 아이템 선정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변액보험증권은 노후 대비용으로 10년 넘게 가입하는 초장기 상품인데다 가입 시기도 제각각인 상품을 단순 비교했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설명이다.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이승신 교수는 “브랜드와 제품명을 실명으로 공개해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결정할 때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라며 “하지만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와 같은 공신력을 얻으려면 제품군의 다양화, 공정위로부터의 재정 독립, 실험의 전문성 등이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 K-컨슈머리포트에 적극 대응 필요
k-컨슈머리포트의 공신력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기업의 경우 컨슈머리포트의 영향력 증대를 고려,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LG 경제 연구소 이진상 책임연구원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과거처럼 기업의 직접적인 마케팅 활동만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점점 더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기업들은 K-컨슈머리포트를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한 제3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체일수록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할 대상인 K-컨슈머리포트의 등장이 반가울리 없겠지만 인터넷 등장 초기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한 기업들이 큰 곤혹을 치렀다는 점을 교훈 삼아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실제로 미국에 수출하는 대기업들은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에서 테스트 하는 항목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스스로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활동은 궁극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높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또 “K-컨슈머리포트가 이슈화되는 것만으로도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면서 “이제 기업들은 이미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제품과 서비스 그 자체의 경쟁력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