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또이 디 쯔엉” 경기도의 J초등학교 4학년인 수민이(가명·11·여)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부터 매일 아침 부모님께 하는 인사다. 한국인인 아빠에게는 한국어로 베트남 출신인 엄마에게는 베트남어로 각각 인사한다. 수민이의 아침인사는 한국에 온 지 10년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불편을 느끼는 엄마에 대한 작은 배려다.
한국 사회는 개방화, 결혼이민, 외국 노동력 유입 등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다문화 사회로 깊숙이 진입하기 시작했고 2011년 4월 현재 이주민 인구는 135만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7%를 차지하며 2000년 49만 명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다.
이주민 수가 늘면서 다문화 가정과 자녀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정 자녀수는 2007년 4만4258명에서 2009년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 15만1154명이 생활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로 이들의 지속적인 유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이러한대도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지나친 순혈주의, 민족주의로 이들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지수’에 따르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것에 대한 찬성은 36.2%에 불과했으며 한국인의 혈통중시 비율은 86.5%에 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수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조선족으로 밝혀지면서 인터넷상에서 인종차별적 발언과 비난이 쏟아졌고 반다문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다문화 사회 성숙기에 진입했지만 국민의 인식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일방적 동화보다는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8일 열린 다문화가족포럼에서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로 인한 이주민의 규모와 양상이 달라지면서 이주민의 일방적 동화를 통한 사회통합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인과 이주민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문화 가정 해체현상 심각…더 세밀한 정책적 배려 필요 =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다문화 가정이 살아가기에 어려운 곳이다. 많은 다문화 가정이 심각한 해체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지난 7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다문화 가정 상담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2011년 한 해 동안 648건의 이혼상담이 접수됐다. 전년도인 2010년 이혼상담이 472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7.3%나 급증했다.
이혼상담은 단순히 상담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다문화 가정의 이혼률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다문화 가정의 이혼은 1만4319건으로 전년보다 4.9%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이혼 중 12.3%를 차지하는 수치다. 2011년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혼인 건수 2010년에 비해 15%정도 감소한 반면 이혼상담 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다문화 가정의 해체현상은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혼이나 가정불화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자녀들이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와 사회에서 따가운 눈초리에 시달리는 다문화자녀들이 그나마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가정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현주 사단법인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현장에서 다문화 가정의 해체현상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10년 후 기성세대가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과거 농촌지역 지자체의 국제결혼 장려정책 등 다문화 사회 물꼬를 터 놓은 것이 ‘관’인 만큼 ‘관’이 책임을 지고 더 세밀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