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윤금순 비례대표 1번 당선인이 4일 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당 자체 진상조사 결과 4·11 총선에 앞서 진행했던 비례대표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온라인 투표선 절반이, 현장투표선 70여곳 중 61곳에서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처음으로 사퇴를 시사한 것이다. 전날 이정희 공동대표는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지겠다”고만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의 도덕성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민주통합당과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이 대표가 여론조작 부정 물의를 빚은 데 이은 총체적 부정으로 평가되면서 여론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뒤 지지율은 3일만에 8.4%에서 6.8%로 하락했다.
일각에선 이번 부정경선 사건을 두고 “이승만 정권 때 부정선거 방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 비례 1번 윤금순 사퇴 시사…“송구스럽고 부끄럽다” = 농민대표로 추대돼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윤 당선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파문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이 국민여러분들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을 매우 송구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지금껏 농사지으며 농민운동, 여성농민운동의 한 길을 걸어왔다”면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조직후보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같이하며 당선자로서 저 자신도 함께 책임질 것임을 밝힌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과 자리를 함께 한 전여농 박점옥 회장, 한경례 사무총장, 임은주 정책위원장 등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진보당 대표단의 전원 사퇴와 순위 경선에 참여한 비례대표 후보 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대표단과 비례대표 당선인 및 후보들에게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 통합진보당이 새롭게 다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윤 당선인의 책임소재에 대해선 “전여농 윤금순 후보는 어떠한 부정과도 무관하기에 후보에 대한 그 어떤 부정의 의혹이나 흠집내기에 관련하여 단호하게 대응하고 대처할 것”이라며 감쌌다.
◇ 여야 “진보당 부정, 과거에도 있었다” = 진보당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야를 초월했다. 보수당인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은 사실상 ‘당 해체’를 주장했고, 민주통합당과 진보론자들 사이에서까지 “뼛속까지 썩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진보당 내에서도 이 대표를 비롯해 구 민주노동당 계열의 ‘당권파’가 주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전문가인 새누리당 하태경 국회의원 당선인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민노당 계열이 부정 경선을 한 것은 단순히 1회적인 문제가 아니고 당 초기부터 계속돼왔다”고 했다. 그는 “한 두 번의 실수면 당대표가 사퇴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해결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이들 세력이 기본적으로 북한 추종세력들 아니냐. 북한을 추종한다는 건 독재를 추종한다는 것이고,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 양심에 거리낌 없이 부정경선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치세력이든 제1 도덕적 원칙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 당선인은 또 “이번 사건은 거의 이승만 정권 때 부정선거 방식”이라며 “정당을 해산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들을 배제하고 새롭게 진보정당을 구성하는 게 장기적으로 진보정당의 발전을 위해서도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대표가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지겠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행동을 유보하고 있는 데 대해선 “이정희 대표가 실세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실세는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비례대표 2번 당선인인 이석기씨가 유시민 공동대표와 만나 사태 해결을 위한 딜을 했다고 보도가 됐는데 그것도 이 대표가 실세가 아니라는 증거”라며 “당권파 내부에서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진보당 대변인실은 이날 이 당선인과 유 대표간의 당권거래를 시도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대표적 진보학자이자 민노당 출신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MBC라디오에 출연, 진보당의 부정경선 사건을 두고 “충격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사태”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제가 아는 한 그분들은 명백한 증거 들이대도 아니라고 발뺌하고도 남을 분들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다”며 당권파의 비도덕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그분들이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진 교수는 “사실은 제가 민노당 시절에 당에 있었고, 그때 제가 (이런 문제를) 계속 지적했었고 아마도 그런 문제 때문에 탈당을 했던 최초였을 것”이라며 “제가 아마 그때부터 보고 이분들이 민주주의의 인식자체가 없는 게 아닌가 이런 판단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이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히자 진보당이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선 “검찰이 치고 들어올 경우에 외려 부정선거 저지른 측에서는 좋아할 것”이라며 “이 사람들 그때부터 부정선거 가해자가 아니라 공안탄압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그래서 검찰이 진보당 자체를 공격하게 되면 진보당 사람들은 지금 싸우고 있는데 계파와 관계없이 일단 당을 방어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당권파, 과거에도 계속해서 선거 부정 = 당권파는 현재 당내 절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의 모태는 1991년 NL(민족해방·범주체사상) 계열 운동권 단체의 집합체인 ‘전국연합’으로, 종북주의자로 평가된다. 진보당의 전신으로 민노당 시절인 2008년 PD(민중민주)계열을 당 밖으로 몰아내며 분당사태를 맞이한 것도 이들의 종북주의적 성향 때문이었다.
사실 2001년까지만 해도 민노당 주류는 당권파가 아닌 PD계열이었다. 이 때문에 당권파는 당을 접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당 장악시도를 해왔다. 당시 PD계열이 쥐고 있던 용산지구당을 지금의 당권파가 대규모 위장전입 등을 통해 접수한 게 밖으로 알려진 대표적 부정사례다. 그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위장전입과 당비대납, 유령당원 등의 선거부정을 일삼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최근 이 대표의 여론조작과 비례대표 경선 부정까지 밝혀지면서 진보당은 그야말로 적전분열의 상태에 놓였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런 진보당과 손잡고 대선까지 가야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