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영화 ‘은교’는 아주 야한 영화다…왜?

입력 2012-04-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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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를 설명하기 위한 코드는 참 많다. 표면적으로 가장 드러난 포인트는 노출이다. 평단의 공통된 의견은 ‘결코 야한 영화가 아니다’에 맞춰져 있다. 정말 ‘은교’는 야한 영화가 아닐까. 아니다. ‘은교’는 야하다.

노출에 따른 ‘야하다’로만 보면 상당한 수위다. 문단의 거두 ‘이적요’(박해일)의 나신이 영화 시작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다. 늙어서 탄력을 잃은 몸, 팬티 속 힘 없이 늘어진 성기는 이적요가 말한 ‘늙음이 벌이 아니듯 젊음 또한 상이 아니다’는 말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 장면 하나로 인해 이적요가 느끼는 외로움과 삶에 대한 회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젊음에 대한 탐닉의 이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개인적으로 ‘은교’ 최고의 미쟝센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 이적요에게 예상 가능한 삶의 전환점이 다가온다. 어디서 또 어떻게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은교’(김고은) 말이다. 이적요와 서지우의 눈에 들어온 ‘은교’는 뙤약볕 아래 자리한 아름드리나무 그늘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새하얀 목선, 새하얀 반팔 티셔츠와 핫팬츠 그리고 묘하고 꼬아 앉은 은교 다리와 발. 너무도 도발적이다. 고개를 돌린 채 잠이 든 은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카메라는 끈적한 시선으로 훑는다. 그 카메라가 곧 이적요의 눈이자 성(性)적 욕구의 돌파구다.

이 장면에서의 은교를 감독은 ‘노출의 야함’이 아닌 ‘감춤의 에로틱’으로 표현했다.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다가오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다. 특히 은교의 새하얀 목선에서 잠시 멈추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은 17세 은교의 싱그러운 육체가 가져올 파국의 미래를 선명하면서도 은유적으로 그린다. 자신의 늚음을 삭혀가는 이적요에게 은교의 이런 모습은 가질 수 없는 ‘젊음의 뮤즈’이자 육체적 한계의 약점을 커버할 일종의 욕정 그 자체다.

그렇게 본다면 ‘노년에게 욕망은 무의미하다’는 일반론적 개념을 ‘은교’는 철저히 거부한다. 거부할수록 용솟음치는 이 욕망을 이적요는 은교를 통해 느끼고 해소하려 든다. 잠든 은교의 가슴을 훔쳐보며 상상 속 나래를 펼치는 이적요. 젊음이자 관능이며 또 성적 판타지의 또 다른 이름인 은교가 이적요에겐 어쩌면 또 다른 자아의 현실일 수 있다. 그는 눈앞의 은교를 두고 상상 속 젊음의 자신으로 하여금 육체적 사랑을 은교에게 전한다. 육체적 사랑만이 아니다. 이적요가 은교를 성과 젊음의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장면도 나온다.

헤나 문신을 그려주는 은교의 무릎을 베고 그녀의 얕은 숨소리와 닿을락 말락한 살결을 느끼는 이적요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관객마저도 일종의 오르가즘을 느낄 정도로 짜릿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과 상상의 경계점이 무너지는 이적요의 모습에서 은교는 어쩌면 실체가 아닌 이적요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의구심마저 든다.

이런 관점이라면 영화 ‘은교’는 이적요의 노년이 만들어 낸 ‘로리타’적 성향의 판타지이자 자아 존립의 불안감이 담긴 심리 에로틱 영화로 탈을 바꿔 쓴다. 물론 감독이 원한 방향점은 그것이 아니기에 서지우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럼 서지우의 입장에서 ‘은교’를 바라보자. 서지우는 ‘별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 10년이 걸린’ 한심한 공대생 출신의 제자다. 물론 이적요의 시선에선 말이다. 하지만 서지우는 자신에겐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이적요에 대한 원망은 없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다다를 수 없는 고귀한 목표점이자 닿을 수 없는 또 닿아서도 안되는 그런 존재기 때문이다.

그런 이적요가 ‘은교’로 인해 오염됐다. 자신보다 더 자신에 가까운 이적요를 위해 서지우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돌려야만 한다. 오죽하면 하늘같은 스승에게 ‘더러운 스캔들’이라며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야만 했는가. 과연 이적요는 서지우의 일갈처럼 더러워진 것일까.

그 더러움의 정화 작용으로 서지우는 문제의 화근인 은교를 취한다. 서지우에게 은교는 젊음과 관능 그리고 도발의 상징보단 단지 이적요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왜 그럴까. 이적요의 상상과 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은교’를 취함으로서 이적요에게서 얻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대리만족 하려든다. 나아가 ‘은교’와의 섹스로 이적요의 내적 외적 모든 것을 갖겠다는 야심마저 드러낸다. 서지우의 시선에서도 영화 ‘은교’는 몸과 마음 모두를 벌거벗기고 마는 적나라한 벗김의 행위 예술일 뿐이다.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은 영화 원작인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 속 “마음에 청춘이 있으나 껍데기가 늙어가는 것” 같다는 대목에 주목해 30대의 박해일에게 70대의 이적요를 맡겼다. 영화 중반까지 관객들은 ‘은교 속 이적요’가 아닌 ‘박해일의 이적요’를 보게 되지만 심적 요인에 주목한 연출의 영민함에 이내 시각이 무뎌지고 머리로 영화를 받아드리게 된다. 물론 리얼리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원작의 훼손성은 남아 있다.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한 ‘은교’의 타이틀 롤을 맡은 신예 김고은은 현장에서 ‘김고은교’로 불릴 정도로 신인답지 않은 대범함을 바탕으로 카메라 안에서 야생마처럼 뛰어다닌다.

재능 대비 야심과 콤플렉스로만 이뤄진 서지우의 불안함을 조율한 배우 김무열의 연기는 이번 ‘은교’속 세 인물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때론 날카로울 정도로 예민하고 어떤 면에선 무딜 정도로 닳아빠진 감정의 날을 적재적소에서 스크린 위에 세워놓는다.

결론적으로 ‘은교’는 이적요와 서지우 또는 늙음과 젊음이 느끼는 성적 판타지의 자기 고백서로 정리해야 할 듯하다. 결국 영화 ‘은교’는 야한 영화이면서도 단순한 ‘야함’이 아닌 심적 동요의 벗김에 주목한 독특한 형식의 ‘야한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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