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가 뜬다]한잔의 커피에 열정 담아

입력 2012-04-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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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회사대표 엘리트 코스 은퇴하고 공허함 느껴…바리스타·문화 강사 ‘인생2막’

▲30여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바리스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이병영씨가 자신이 만든 커피를 자랑스럽게 권하고 있다.
“여기 아이스 커피 2잔 주세요”

한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 지난 24일 서초구 방배노인복지회관 1층 커피숍에는 머리가 히끗한 2~3명의 노인들이 커피 주문을 받느라 분주했다.

커피숍은 흔히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을 맞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그와는 반대로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밀려드는 손님들의 커피 주문에 분주한 ‘실버 바리스타’ 중에는 30여 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바리스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이병영 씨가 있다.

이씨는 6.25 전쟁이 일어난 해인 1950년 태어나 올해 62세를 맞았다. 외무고시에 합격 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등에서 30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다 지난 2005년 정년퇴직했다. 이후 그는 무역회사에서 대표이사로 4년간 더 근무했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고 잘나가는 외교관과 주식회사 대표까지 지낸 그였지만 인생의 절반이상을 함께한 ‘직장’의 부재는 인생의 공허함 마저 느끼게 했다.

“정년 후 연금 받으면서 골프치고 해외여행도 다녀봤죠. 딱 2달 지나니까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뭐가 허전한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죠? 지금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겁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아마 그때는 지금 제 느낌을 알 수 있겠죠”

그가 바리스타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이다. 우연히 시작한 밑반찬 배달, 치매노인 돌보기, 청소가 그의 후반기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는 단순한 봉사나 사회생활 때문에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연히 그런 일들을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지요. 나의 두 번째 인생 진로는 나 같이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노년들이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요”

이씨는 외교관 시절엔 국가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고 지금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노년층 의 일자리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만큼 본인이 앞장서 일자리를 만들고 후배들이 이 길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사명감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씨가 일하는 노인복지관 커피숍도 6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2명으로 인원이 2배 가량 늘었다. 그만큼 일자리를 가진 노인들이 많아졌다. 그는 일주일에 2일은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나머지 3일은 반포사회복지관에서 중남미 문화 강사로 일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지만 가족들은 이런 활동을 하는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딸들이 아버지 멋있다고 난리에요. 집에만 있던 아버지가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니 그게 보기가 좋은가봐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하겠다고 했다.“노인에 대한 최대복지는 일자리라고 생각해요. 취미생활을 즐기게 해주는 교육도 좋지만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다시 ‘열정을 담기 위해’ 2평 남짓한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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