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폭발한 한국영화 호황에 영화인들은 앞 다퉈 불문율 깨기에 도전 중이다.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2월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무려 75.9%였다. 점유율 70%대는 이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단 세 차례(2007년 2월, 2011년 9월) 뿐이었다. 영화인들이 도전해 볼만한 시점이 지금인 이유다.
극장가로 눈을 돌려보자. 최근 소설에 기반을 두고있는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성적은 어떨까. 꽤 재미를 보고 있다. ‘잘 될 때 당겨 보자’는 심산일까. 또 다른 원작 기반 영화 기획 및 준비도 시나브로 형성되는 분위기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노릴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텍스트의 시각화를 통해 관객들의 호기심 극대화를 노린 흥행 꼼수가 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침 바르며 책장 넘기는 재미는 없다. 이런 수고스러움을 누군가 요약정리로 대신해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원작이 아닌 영화를 선택했다면 참 얄팍스럽지만 똑똑한 선택이라 칭찬해 주고 싶다.
두 번째는 산업화로 확대된 영화계의 동반 성장 시도 정도. 숨겨진 소설 발굴로 영화 개봉 후 짭짤한 수익이 따라왔다면 원작 소설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도 분명 상승한다.
그럼 ‘자 영화는 이런데 원작은 어떨까. 궁금하지’란 일종의 ‘찔러보기’도 가능하다. 꽤 노림수를 걸어볼만한 상업적 방식 아닌가. 실제 사례를 보자.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화차’다. 언론시사 후 쏟아지는 호평에 영화 팬들의 기대치는 솟았다. 개봉일 이후 박스오피스 1위다.
원작 소설은 1993년 일본에서 출간 후 2000년 국내서 초판 됐다. 이미 국내에 확실한 마니아층이 형성된 작가 미야베 미유키 작품이지만, ‘화차’는 상황이 좀 달랐다. 원작 속 시대적 배경과 색다른 서사구조 탓에 그의 작품 중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해왔다. 그런데 영화 개봉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 10’에 이름을 올렸다. 초판 발행 12년 만이다.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서 대중들에게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탁월함이자 교묘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전이나 이후에도 이런 사례는 아주 많고 또 많을 것이다. 앞선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원작 변주를 넘어선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도 있다. 소설 원작 영화의 존재 가치를 설명하는 좋은 예다.
하지만 지금에 이런 분위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안타까움이 크다. 방대한 출판 시장이 형성된 서양의 그것을 부러워하고 우리의 것을 탓함으로 곡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스토리 만들기에 게으른 충무로 감독 책임론을 지적하자면 건방의 극치일까. 지난해 초 지하 골방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배고픔을 호소하다 죽음을 맞이한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너무 빨리 잊혀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