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영화 '화차'가 아쉬운 이유…

연출을 맡은 변영주 감독이 제작발표회 당시 언급한 ‘다양한 variation(변주)’을 밑바탕에 깔고 관람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언급하면 ‘화차’는 절대 영화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고 느낀 점이다. 특히 일본 사회파 소설의 대모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원작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이렇다.

먼저 원작 ‘화차’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원작은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 속에서 한 여성의 인생 역정을 시간의 역순 관계로 되짚어 나가는 한 형사의 수사기록이다. 내용은 타인의 신분으로 위장한 한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잠적을 하면서 시작된다. 단순히 연인간의 사랑싸움 정도로 생각한 형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여성의 과거에 균열이 있음을 간파한 뒤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실체가 있음을 직감한다. 스토리 초반 이후 주인공 여성이 사라진 뒤 형사는 그 여성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여성의 과거에 주목한다.

이 과정은 2012년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지루함과 고루함의 연속이다. 왜 그럴까. 우선 원작 속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시기다. 우리의 IMF와 흡사하다. 개인파산과 카드 대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만든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폐단 양산 이면을 ‘화차’란 개념으로 작가는 정리했다. 여기서 ‘화차’란 일본 속담에 등장하는 말로, 죄를 지은 사람이 한 번 타면 절대 내릴 수 없는 지옥행 마차를 일컫는다. 자, 2012년의 현재와 IMF 당시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영화로 넘어가겠다. 변 감독은 8년 만에 잡은 메가폰을 ‘화차’로 택했고, 그 이유로 앞서 언급한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원작이 갖는 화자 시점 전개 방식과 시대적 배경 및 이른바 ‘열린 결말’이 그 가능성의 이유란다. 여기서 화자 시점의 소설이 갖는 대부분의 특징은 설명적이고 세밀하다. 이미 수백개의 톱니가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빈틈 없이 물려 있단 소리다. 이런 거대한 하나의 기계 덩어리에 튜닝을 가한다면 어떨까. 두 가지다. 더욱 발전된 그것이던가, 아니면 톱니는 어긋나 버린다.

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자. 기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경우 ‘텍스트→비주얼’로 전환되는 시간차에 따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즉 영화는 텍스트가 삭제된 ‘비주얼’ 언어이기에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상상력의 도달 시간이 소설에 비해 짧다. 결국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속 내용을 2시간 내외 시간안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압축 재생산하느냐가 관건이다.

바로 여기서 영화 ‘화차’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원작 자체가 한 여성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란 관점으로 형사의 시각이 흐르는 것에 비해, 영화는 단순히 ‘그 여성이 누구인가’로만 흐른다. 원작이자 책이 갖는 가독성과 주제가 영화로 변환되면서 힘을 잃고 말았다. 영화는 강선영(김민희)이 사라진 뒤 장문호(이선균)와 김종식(조성하)의 버디 무비 형식으로 한순간에 변신한다. 형식 상 버디 무비의 틀을 따르지만, 큰 틀은 역시 강선영이 누구인지다. 영화 내용상으론 문호가 “꼭 만나야 한다. 왜 날 떠났는지 묻고 싶다”며 원작 속 ‘왜 그랬을까’에 근접한 모습을 띠지만, 캐릭터 영화로 흐르는 탓에 그 이유가 모호해 진다. 반면 원작은 화자인 혼마 형사 시점으로 주인공 쇼코이자 교코의 과거를 벗겨가는 상황극 형태다. 캐릭터가 중점이냐 상황이 먼저인가에 관객 또는 독자가 느끼는 이입도는 천지차이다.

영화 '화차'는 미스터리 장르를 따른다. 이 장르의 주안점은 캐릭터의 독특함보단 사건 중심의 스토리 전개가 더 힘을 받는 형식이다. 결국 영화 ‘화차’가 놓친 부분이자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잘못된 변주다. 원작 자체가 영화화 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상황 중심 또는 사건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영화로 옳길 경우 120분짜리 장편 영화로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단순하게 말하면 너무 길어진 다. 물론 500페이지가 넘는 원작을 단 두 시간 안에 집어 넣으려면 스토리의 재구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영화 ‘화차’는 이 단계에 너무 집중했다.

결국 감독은 원작 속 사건의 원경(遠景)인 사회-경제적 폐단의 원인과 과정을 과감히 걷어냈다. 캐릭터에 집중하려는 하나의 방편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스토리 전체의 힘을 잃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인물 중심보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배경에 깔린 사건 중심의 캐릭터 극으로 흘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결국 변 감독이 스스로 밝힌 “원작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망설였다”는 이유가 분명해져 버렸다. 죽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던 한 여성의 내면을 꼼꼼히 짚어간 원작의 의미가 너무나 퇴색돼 버렸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는 감독이 밝힌 변주의 기준에 합격점을 줄 만하다. 주인공 강선영-차경선 역의 김민희는 모델 출신답게 때론 표정변화를 통한 인물의 내면 연기를 소름 돋을 정도로 표현해 냈다. 특히 속옷차림으로 피칠갑을 한 채 스크린을 노려보는 단 한 장면만의 모습으로도 지금까지의 김민희란 배우의 생각을 뒤바꾸기에 충분하다.

원작 속 주인공 혼마 형사역할을 한 김종식을 연기한 조성하도 특유의 완급 조절로 명품 조연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해 낸다. 이선균은 지금까지의 로맨틱한 모습과는 달리 약혼자를 잃은 한 남자의 감정을 토해내는 연기로 다소 과장된 모습을 보이지만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영화 ‘화차’는 전반적으로 원작 속 ‘왜 그랬을까’란 코드 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당초 모양새인 캐릭터 영화로서의 시각을 들자면 합격점은 줄만 하다.

‘밀애’(2002), ‘발레교습소’(2004)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개봉은 다음 달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