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영상 10도를 오르내리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봄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앞으로 한 두번 더 몸을 움추리게 하겠지만 다가오는 봄의 기운은 막을 수 없다. 봄의 시작은 산을 감싸고 도는 바람의 온도에서 느낄 수 있다. 초봄의 산행은 아직 한기가 남아있어 알싸하지만 바람의 따스함이 몸을 더 가볍게 한다.
진안의 상징 마이산의 암마이봉(686m)과 숫마이봉(680m)에 오르는 길은 북쪽과 남쪽 두 곳이다. 산의 풍취를 느끼고 트래킹의 즐거움을 접할 수 있는 남부매표소를 시작으로 조금 걷다보면 제일 먼저 금당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탑사에 정신이 팔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절이나 역사가 1300년이나 된 고찰이다. 경내에는 금칠을 입힌 대웅전이 화려하게 빛나고, 종무소 옆에 소형의 오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오층석탑은 탑신과 옥개석이 제각각으로 조성 초기의 원형은 아니다. 기단부 중석은 다른 돌로 대체했고 갑석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상륜부도 나중에 얹은 것으로 보이지만 절에서 몇 안 되는 문화재 중 하나다. 극락전에는 주요 문화재 두 점이 보장되어 있다. 하나의 은행나무를 깎아 조성한 금당사목불좌상과 폭 5m 높이 9m에 이르는 괘불탱화다. 괘불탱화는 통도사의 관음보살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괘불탱화와 더불어 보살 괘불탱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금당사에서 20여 분을 오르면 마이산을 더욱 신비롭고 유명하게 만든 탑사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들어 안은 절은 이갑룡 처사가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을 응용해 쌓았다는 탑들이 신기하다. 절 마당에는 온통 탑이다. 천지탑, 중앙탑 등 80여 기의 석탑을 자연석으로 막돌 허튼층 쌓기 기법으로 쌓아올렸다. 어지럽게 돌무더기가 놓여 있는 것 같아도 태풍이 불어도 약간 흔들릴 뿐 끄덕도 않는다고 한다.
탑사 뒤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데, 암마이봉을 자세히 살펴보면 윗부분에 폭격을 맞은 듯한 크고 작은 홈들을 볼 수 있다.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보통의 풍화작용은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지만,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해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내 형성된 것이다. 마이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 지형이 발달한 곳이다.
탑사에서 계단을 올라 5분쯤 걸으면 숫마이봉 아래 은수사가 자리한다. 이 절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인연이 있다. 태조가 절에서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해서 은수라란 이름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성계와 관련해서 그가 꿈에서 마이산 신령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라는 금척을 받았다는 전설도 전한다. 꿈 이야기를 그린 ‘몽금척도’가 태극전에 걸려 있다.
겨울철 은수사가 유명한 것은 신비의 역고드름 때문이다. 청배실나무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물 그릇 안의 물이 얼면서 하늘을 향해 고드름이 치솟는다. 학자들은 일종의 대류현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은수사 왼쪽 뒤편에 암수 마이봉 사이로 계단이 놓여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인 천황문이다. 천황문은 일반적인 문이 아니다. 물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암마이봉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 수마이봉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의 원류가 된다. 천황문에서 암마이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나 식생복원으로 2014년 10월까지 등산로가 폐쇄되어 이용할 수 없다. 수마이봉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약 100m 오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의 약수가 흐르는 화엄굴이 있지만, 이곳 역시 겨울철 안전사고를 염려해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천황봉에서 마이산의 정기를 받고 난 후에는 흙의 정기로 빚어지는 옹기를 만나러 가자. 백운면의 손내옹기는 옹기장인 이현배씨가 우리의 발효식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숨 쉬는 항아리는 만들어내는 곳이다. 간판이 걸려 있지 않지만 도로가에 흙으로 제작한 가마와 옹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나무장작이 쌓여 있어 찾는 데 어렵지 않다.
손내옹기에서 진안에서의 특별한 체험을 위해 노채마을로 이동한다. 노채마을은 농촌체험과 머루와인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겨울철에는 추위 때문에 농촌체험이 뜸하지만, 마을 특산물인 머루로 담근 와인 저장창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진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홍삼스파. 여행의 피로도 풀 수 있고, 한겨울 추위에 고생한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여행지다. 노채마을에서 마이산 북부주차장 입구의 홍삼스파로 가는 길에 천천히 드라이브하면서 용담호의 풍취를 즐겨보자. 겨울이 내려앉은 호수는 무겁고 차분한 느낌으로 길손을 맞는다. 진안은 본래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지만 2001년 용담댐이 완공되면서 내수면형 관광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댐인 용담댐으로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고, 맑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길을 따라 호반여행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