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미래가 우리 사회의 미래다. 사회적 필요가 대학을 만들었지만 대학은 그 다음 사회를 만들어 낸다. 우리 사회의 대학의 많은 변화가 예고되는 2012년 한 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겪고 있는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대학은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지, 대학이라는 기관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물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현장의 많은 교수들은 “대학이 시장화되면서 정작 가르쳐야 할 것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에만 매몰돼 직업양성소처럼 변해버린 나머지 ‘인간’을 길러낸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이 퇴색되고 있다는 것. 외국 명문대의 경우 오히려 실용적인 학문에 앞서 교양교육과 인문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학을 움직이는 것은 1차적으로 정부의 정책이다. 현정부 대학교육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정부의 대학정책은 온통 ‘산업적 필요성에 따른 인재육성’에 맞춰져 있다. 이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012년 업무보고를 통해 올 한해 “대학에 창업을 강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서 드러난다. 취업률에 이어 창업까지 강조한 것은 결국 대학교육의 목적이 ‘일자리’에 있다는 철학을 내 보인 셈이다.
정부는 대학들에 경쟁을 붙였다. 탈락자에 대한 벌칙은 ‘퇴출’. 대학에게는 사형선고다. 대학들이 비판할 새도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고 눈에 보이는 취업률 숫자를 늘리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교수들의 성과는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몇 명을 취업시켰는지에 따라 평가됐다.
당장 숫자에 보탬이 되지 않는 학과와 개설과목 등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됐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등에 대한 학과폐지가 단행됐다. 학교 전체의 취업률을 깎아먹는다는 게 폐지의 이유다. 학문이니 지성이니 하는 단어는 사치가 됐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는 “교과부가 대학을 내실화 한다며 취한 조치들이 오히려 대학의 수업과 공부 등 본질적 부분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취업률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운다?
이 장관 본인도 이 같은 대학정책으로 인한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 장관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자신도 물론 ‘대학의 시장화’ 등 일부 비판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대학의 기능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거들어 “국가경쟁력 위해 대학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수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정작 세계의 명문대학과는 반대 방향이다. 현재 세계의 명문대학들은 그동안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 아래 외면했던 인간과 문명에 대한 교양교육을 부활시키고 있다. 자국의 미래 리더가 될 인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홀대를 받고 있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비판 능력과 사고력을 키워 주는 것이 지구촌 대학의 모습이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는 1, 2학년 필수과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마르크스 등 이르는 저작들과 단테와 버지니아 울프 등 서양문학의 고전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MIT에서는 공대 학생들도 책읽기와 글쓰기 등 인문학에 기초한 교양과목을 졸업할 때까지 의무적으로 8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예일대 의대에서는 예술작품 관람을 통해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교육의 목적은 어차피 ‘사람 길러내기’”라며 “고교 졸업자 80% 이상이 대학으로 진학하는 나라에서 대학교육은 이미 대중교육이고 국민적 교육이다. 어떤 국민을 길러내고 어떤 역량의 인재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는 사회와 국가의 공적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