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특허전쟁]업종 경계 무너지며 기업간 합종연횡…특허가 ’최종 병기’

입력 2012-01-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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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의 원인 ‘컨버전스’

# 구글은 최근 IBM으로부터 미국에 출원된 특허 188건과 현재 출원 중인 특허 29건 등을 추가로 취득했다. 구글은 애플 등과의 특허전쟁에서 자사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의 피소를 막기 위해 1년 전부터 IBM 등으로부터 모바일과 관련된 각종 특허권을 지속적으로 구입하고 있다.

# 필름업체 코닥은 지난 11일 디지털 사진과 관련된 기술에 대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애플과 HTC를 상대로 뉴욕 로체스터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코닥은 애플과 HTC의 휴드폰 및 태블릿PC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부당 이득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특허를 무기로 삼아 치열한 소송전을 펼치게 된 것은 ‘컨버전스’ 가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간에 업종을 넘나들고,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특허야 말로 중요한 공격무기가 된 것이다. 기존 강자는 특허를 앞세워 새로 진입하려는 기업의 숨통을 죈다. 새로 진입하는 기업은 특허를 사들이고, 특허를 보유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세를 불린다. 스마트폰,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융·복합 제품이 많아지면서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특허가 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카메라 업체와 휴대폰 업체가 싸움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 vs 애플, 모바일 주도권 싸움= 특허전쟁은 IT업계가 가장 치열하다. 삼성전자(휴대폰 제조사), 구글(인터넷 업체), 애플(PC, MP3 제조사), MS(소프트웨어 업체) 등 각기 다른 영역을 지배하던 기업들이 ‘모바일’이라는 한 배를 타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제품은 광범위한 특허가 필요하며 운영체제(OS)를 갖고 있는 주요 업체들 모두 통신 기술이 취약하다. 때문에 특허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한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는 곧 집단 대 집단의 대결로 변모했다.

이 같은 특허 전쟁의 중심에는 애플이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들이 잇따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을 지켜야 하는 애플은 특허를 내세워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 전쟁은 단순히 두 회사의 경쟁구도가 아니다. 바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애플 간의 글로벌 모바일 시장을 놓고 벌이는 패권다툼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는 삼성전자를 도울 뜻을 내비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LG경제연구원 손민선 책임연구원은 “이제 특허 소송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 기업에 대한 특허 공세는 같은 생태계에 속해 있는 다른 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같은 안드로이드 생태계 아래 있는 HTC와 모토로라가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 내는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글이 IBM에서 특허를 사들이고 125억 달러에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도 애플 등 경쟁기업의 특허 공세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조용하던 MS도 구글이 인수한 모토로라를 상대로 스마트폰과 관련된 7건의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서 특허 대전에 합류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 셈이다. MS는 휴대폰 세계 1위 위상이 점점 추락하고 있는 노키아와 캐나다의 림사에 대한 M&A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민선 책임연구원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잇따른 소송으로 제조사들의 고민이 커지면, 대안으로서 가치가 부각되는 MS에게는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중요한 소송이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영역을 넘다든다= 기술이 컨버전스되자 특허도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기업들이 사업다각화에 나서면서 기존 사업자와의 특허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애플이 HTC를 제소해 실질 심판 승소 결과를 받아낸 소송 항목은 모바일이 아닌 컴퓨터 분야의 원천특허다.

컴퓨터 기기가 네트워크를 통해 음성과 비디오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에 대한 특허와 이메일 확인 기능에 관한 특허 2개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 특허 2개는 지난 1994년과 1996년에 애플이 신청한 것으로 스마트폰이 시장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다.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융합한 결과다.

애플이 카메라 필름 업체 코닥에 의해 디지털 이미징 특허 침해 소송에 휘말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코닥은 삼성, 림 등에 ‘이미지 미리보기’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해 합의금을 받아낸 사례가 있다.

스마트폰에 사용된 디지털 이미징 기술의 80%가 코닥이 보유한 특허와 관련됐다는 분석도 있다.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찍어, 편집하고 확인하는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휴대폰 제조사와 카메라 업체간의 특허 분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LED조명 시장에서는 기존 사업자(오스람)가 새로 진입하려는 사업자(삼성·LG)를 막기 위해 특허를 내세우고 있다.

오스람이 국내 기업에 특허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급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조명시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전 세계 조명 시장은 독일 오스람, 네덜란드 필립스, 미국 GE 등이 ‘삼분’ 해왔다.

하지만 조명시장의 무게 중심이 형광등과 백열등에서 LED로 이동하면서 삼성과 LG가 시장에 발을 들여놨다. 업계는 시장에선 세계 최고의 제조경쟁력을 갖춘 삼성과 LG가 LED조명 시장에 뛰어들면서 조명시장 판도가 급격히 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스람 등 기존 사업자는 특허 공격으로 이를 해결해 보려는 심산이다. 이에 대해 삼성과 LG도 맞소송을 내며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성기 한국국제지적재산보호협회장은 “과거 우리나라 기업은 글로벌 특허 분쟁에서 항상 피고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기업에 소송을 거는 원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이 그 중심에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인정받고 있고,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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