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강남 부자’들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이들은 본인의 자산이나 소비 습관 등을 외부로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기간 VVIP 고객들의 자산관리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눈을 통해 윤곽을 그려볼 수는 있다.
PB들이 말하는 가장 평균적인 ‘강남 부자’는 자수성가한 70대 남성이다. 본인 소유의 아파트 외에 아파트 한 채, 상가 한 동을 갖고 있다. 금융자산은 30억원이 넘는다.
그는 30년 이상 강남에서 살아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서 나오는 안정적 수입은,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액수로도 충분한 투자 종자돈이 됐다. 주변에서 하는 대로 우량주·펀드·채권 등에 여윳돈을 묻어뒀을 뿐인데 어느새 재산이 쏠쏠히 늘었다.
부동산에 투자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은 없었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 값이 껑충 뛰어 흐뭇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식들 결혼시킬 때 집 사 줄 생각을 하니 불안해져, 작은 아파트를 자식 수만큼 샀다. 자식들도 강남에서 나고 자랐으니, 자식들을 위한 아파트도 자연히 집 근처다. 구입한 아파트들은 너나없이 쑥쑥 올랐다.
신영증권 청담지점과 압구정지점 지점장을 겸임하고 있는 권형진 지점장은 자신의 고객들에 대해 “대기업에서 임원을 끝까지 하거나, 의학계나 법조계 등 전문직 종사자거나, 정부 고위공무원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송윤석 대우증권 WM클래스도곡센터장 역시 “개인사업을 운영하는 고객과 대기업 임원이 가장 많고, 전문직 종사자는 의사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절대다수의 자산가들이 ‘수입만으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모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남권 PB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대기업 임원들의 경우, 삼성그룹 임원들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59억9000만원, 삼성물산 12억2000만원, 호텔신라 11억8400만원이었다. 페이오픈 자료에 따르면 현대자동차(20억2000만원), KT(15억1000만원), LG화학(12억8000만원), 포스코(12억6000만원) 등 임원 평균 연봉이 10억원을 넘는 대기업이 많다.
30대, 40대의 젊은 부자는 아직 드물었다. 강남 PB들은 “드물게 보는 ‘젊은 부자’는 벤처기업, 부유한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여성 자산가도 거의 없었다. 송윤석 센터장은 “도곡WM센터를 찾는 고액자산가 중 여성은 현재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지역적 특성에는 차이가 있었다. 송윤석 센터장은 “도곡센터 고객 중에는 타워팰리스가 미분양됐을 때 이사온 삼성그룹 임원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고, 이일주 솔로몬투자증권 대치와이즈 영업팀장은 “7억원 이상의 자산을 상담하기 위해 지점을 찾는 젊은 ‘스타강사’들을 종종 본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투자 성향은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강남 부자’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산을 늘리기보다는 장기적으로 현재 자산 가치를 지켜가려는 보수적 투자자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일주 팀장은 “일반인에 비해 채권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고, 부동산 중에는 토지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다”며 “지금 당장 오르지 않아도 손자 대에는 오를 것이라는 식으로 멀리 보는 성향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권형진 지점장은 “30억원 넘는 자산을 주식에 투자한 고객도 주가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배당주, 장기 성장성이 기대되는 우량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송윤석 센터장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자산가치를 지키는 것을 투자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은퇴 후 정기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월지급식 상품, 무수익 자산을 수익자산으로 변경하는 방법 등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여행 등 문화생활에 치중된 소비 성향도 공통적이었다. 이일주 팀장은 “고객이 장기간 연락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여행을 갔기 때문”이라며 “1년에 최소 100일 정도는 해외 등으로 여행가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권형진 지점장은 “의외로 고액 자산가들의 평소 생활은 검소한 편”이라며 “자녀 유학, 진로 등의 문제나 오페라 등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