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29·여)씨는 3개월 전 다니던 은행을 그만뒀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은행이었다. 그가 맡던 일은 은행 창구에서 고객을 맞는 계약직 텔러였다. 지점에서는 항상 밝은 미소를 띄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사실 직장을 떠나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지난 2010년 남들보다 2~3년 정도 늦게 입사했다.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서울 소재의 대학을 졸업했다. 금융위기 탓에 취직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은행 텔러 모집 공고를 봤다. 독일어를 전공한 탓에 은행은 생각지도 않았던 터였다.
합격하고 난 뒤 그가 처음 받은 연봉은 2300만원이었다. 출근은 오전 7시, 퇴근은 오후 10시로 하루 15시간의 강도 높은 일에 대한 대가였다. 낮에는 고객과 밤에는 숫자와 씨름을 했다. 취업 후 얼마동안은 부모님께 텔러라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는 분리직군제로 인해 계약직인 텔러가 아닌 정규 신입사원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을 해가며 다닌 은행이지만,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친구도 많다”라고 자위하며 견뎠다.
그의 다짐이 무너진 계기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정규 신입 행원이 연 1000만원 이상 더 받는 걸 알았을 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것도 신입행원 임금 삭감으로 인해 20% 깎인 액수였다. 실적에 대한 압박은 정규 행원이나 자신이나 같았다. 때론 더 늦게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도 2년 더 근무하면 정규직과 비슷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어도 정규 사원의 임금 수준을 쫓아갈 순 없었다. 15년 동안 창구직을 맡은 여자선배는 연봉으로 4500만원 정도를 받았다. 김씨의 입사 동기인 100여명 중 30% 가량은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은행을 그만둔 지 한달 뒤, 김씨는 선배 소개로 한 출판사에 취직했다. 이번에도 계약직이었다. 하는 일은 독일어 문제집 교열이었다. 우리나라 고등 교육에서 독일어 인기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받는 돈은 은행보다 적었다. 그는 요즘 대기업에 다니면서 “연말 성과급이 1000만원 가량 나왔다”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꺼려진다.
김 씨는 “사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내가 이만큼의 돈 밖에 못 받고 그들은 나보다 몇배의 돈을 받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지는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김 씨는 이같은 현실이 답답한 듯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생애 처음으로 투표를 할 생각이다. 자신의 한 표로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