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지음/ 박진빈, 김동노, 임종명 옮김/서해문집 펴냄/4만5000원
한반도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 내 몇 안 되는 한국전문가이자, 동아시아 관계에 정통한 역사학자다.
커밍스는 이 책에서 미국사를 다루면서도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 주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특히 현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다른 저자들이 분리해서 다루었던 미국 국내사와 세계사, 국제관계와 정치경제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경제를 하나로 묶어서 본다.
미국은 광대한 땅을 차지한 세계 최초의 패권국가다. 미국은 태평양 세기의 주권자임을 주장하는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제국주의 섬나라가 아니며,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대양을 향해 열려 있는 대륙국가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에 모두 긴 해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서양 국가이면서 동시에 태평양 국가인 유일한 강대국이다.
미국이 1941년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아우르는 강대국으로 출현한 것, 특히 양 해안 지역과 그 사이에 있는 많은 곳(시카고, 휴스턴, 덴버)의 첨단 기술이 미국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논지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은 우리 시대의 중반 이전부터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책의 중심 문제는 대서양 지역의 국제주의와 태평양 지역의 팽창주의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느냐다. 이 두 가지가 미국이 세계와 관계 맺는 두 측면이기도 하다.
커밍스는 이 책에서 패권국가 미국을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분석했다. 첫째, 두꺼운 인구 층과 여전히 역동성을 지닌 대서양 해안과 중부의 경계 지역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면서 더 큰 활력을 지닌 태평양 연안을 포함하는 미국의 특이성.
둘째, 에덴의 정원 혹은 아르카디아처럼 훼손되지 않은 채 무한히 펼쳐지며, 백인이라는 비료를 통해 유토피아로 개발될 빈 대륙을 채워나간 이주민의 확장 그리고 거의 200년 전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정원을 변화시킨 끊임없는 산업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의 결여.
셋째, 유럽인과 미국인의 만남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백인 정착민과 유색 인종의 조우. 넷째, 150년 전 포크가 이끈 멕시코 전쟁 직후 페리에 의한 일본의 ‘개방’과 함께 시작되어 대서양주의의 담론과는 일치된 적이 없으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온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 다섯째, 미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 전체와의 상호 작용에서 1941년이 의미하는 전환기적 중요성.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은 대서양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행동했고, 이는 유럽과의 오래된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1945년 승전 이후 미국과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국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게 됐다.
여섯째, 서부 지역, 특히 캘리포니아를 개발하는 데 미치는 중부 지역의 역할. 일곱째, 한국전쟁과 냉전 시 군도群島의 형태로 만들어져 태평양에 강한 영향을 끼친 군사 기지의 국제적 배열. 여덟째,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탁월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핵심 요소였던 국가 주도의 디지털 혁명. 이 책은 184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면서 이 주제들을 때로는 연대순으로, 때로는 시간 순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반복해서 논의한다.
특히 커밍스는 미국 중서부부터 태평양까지 서쪽으로의 이동이 어떻게 미국을 세계적으로 산업, 기술, 군사 강대국이 되도록 해주었는지 서술한다. 그는 국내사와 국제사, 국제관계, 정치경제를 결합시켜, 기술적 변화와 급속한 경제적 발전이 한 세기 이상 세계를 주도해온 국가 경제를 창출해왔음을 보여준다.
커밍스는 미국과 멕시코, 필리핀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대서양 중심주의와 태평양 관점을 결합시킨 미국사에 대한 양면적 접근을 통해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통합적 역사의 멋진 성과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