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더블딥 우려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 등 유럽 재정위기가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국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미국의 더블딥에 대한 불안 심리가 다시 유럽의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신흥국으로 전이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
세계 주요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는 것도 세계 경기 불안에 따른 수출 감소 등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이 삐그덕 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8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8억 달러로 금융위기 이후 위기설이 나돌던 작년 8월 12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돛단배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방증한다.
원ㆍ달러 환율 급등 역시 한국 경제 성장률을 갉아 먹으면서 하방 압력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21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42원으로 수출기업이 마지노선으로 잡은 1062원보다 80원 이상 올라갔다.
현대ㆍ기아자동차의 경우 환율이 10원 상승시 2000억원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만큼 무역수지에 악영향은 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즉,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 경제로서는 가파른 환율 상승으로 인한 국내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 영향으로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급등하고 있는 물가도 한국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로 지난 2008년 8월 5.6%를 기록한 이후 35개월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장기적인 물가상승 압력을 암시하는 근원물가도 작년 같은달 보다 4% 치솟으며, 지난 2009년 5월(3.9%) 이후 26개월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를 반영하듯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 불안으로 인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존 전망치인 4.3%에 비해 0.2%p 오른 4.5%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3.5%로 당초 예상보다 0.5%포인트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금융위기 당시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고 이것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어 긴축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부양 조치는 쉽지 않다. 자칫 경기는 하락하고 물가만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어서다.
비관론자들은 이미 한국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의 수렁으로 빠져버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계 경기 위축으로 인해 수출이 감소되고 있고, 물가의 고공행진과 함께 환율 급등으로 수출 채산성까지 악화되는 현상이 지표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 둔화의 잇따른 경고음으로 정부에서도 기존 낙관론에서 신중론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초 경제 성장률을 4%대 후반에서 4%대 중반으로 낮추려는 것은 정부가 경기 하방 압력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서는 긴축강도 기조는 유지하되 유연성을 두고 세계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과천청사에서 주재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 침체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 것은 한국 경제에 위기기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