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퇴직연금 고금리 출혈경쟁에 제동을 걸기 위해 또 다시 팔을 걷어부쳤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자사상품 운용비율을 70%로 제한한 것.
이로 인해 그동안 예·적금으로 대부분 돈을 굴렸던 은행권에 비해 증권사들의 상대적인 수혜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수혜를 받아온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은 영향이 미미해 증권사별로도 득실여부가 다르게 나타날 전망이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퇴직연금 감독규정을 개정해 퇴직연금 자사상품 제한규정이 적용될 예정이다.
특히, 그동안 퇴직연금사업에 뛰어든 은행들은 4월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수탁액(16조280억)의 약 92%를 자사 예·적금으로 운용해 왔기 때문에 입지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는 달리 16개 증권사들의 전체 퇴직연금 수탁액(5조8560억원) 중 32.4%(1조8996억원)만 각 사들의 원리금 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74.8%, 2365억원)만이 70%를 넘겼을 뿐 미래에셋증권(59.9%, 6854억원), 신한금융투자(56%, 1665억원), 한국투자증권(55.6%, 2639억원), 대우증권(50.8%, 1073억원) 등은 모두 50%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역마진이 불가피하지만, 일단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자사 상품을 편입해 무리한 금리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KT의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된 23곳 중 7개의 증권사들은 평균 5.6%라는 높은 금리를 제시해 사업권을 따냈다. 관계자는 “일단 대기업의 사업권을 따내면 이후 연장계약 등과 같은 혜택을 노릴 수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커질 퇴직연금시장의 장밋빛 전망에 시장 선점 차원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높여 제시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은행권의 자사상품 비중이 높아, 증권사들도 그동안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까지 고금리 경쟁에 나서야 했지만 이번 조치로 금리경쟁이 다소 완화돼 증권사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평가다. 하지만 증권사별 득실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차를 모기업으로 삼고 있는 하이투자증권이나 HMC투자증권은 ‘계열사 몰아주기’로 그동안 역마진이 나는 고금리의 자사 상품을 굳이 운용할 필요가 없었다”며 “대부분 타사 상품으로 자산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금리인하가 단행된다고 해도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은행들이 바터거래 등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잘 지키진다면 금리수준이 안정화되고 실적배당형 투자상품이 확대되는 적극적인 시장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이번 시행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규정이 잘 적용되도록 사후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