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투자의 전설로 꼽히는 워런 버핏은 ‘가치투자’의 귀재로 꼽힌다. ‘가치투자’란 기업 고유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한 뒤 가치가 실현될 때 매도해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조급함과 초조함으로 가득한 주식투자자들이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투자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가치투자 원칙을 꾸준히 지키면서 세계적인 부호의 반열에 오른 버핏을 보면서 투자자들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동경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레이엄은 ‘가치투자’ 이론의 창시자이며, 버핏을 비롯해 어빙 칸, 월터 스클로스 등 투자계의 거물들이 모두 그의 제자이다.
대공황이 있던 1930년대에 이미 체계적인 증권분석이론을 수립해 월가에 ‘가치투자’의 붐을 일으켰으며, 순이익성장률·PER(주가수익비율) 등의 개념도 처음으로 일반화 한 주식투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 증권사 심부름꾼에서 투자계의 전설로
189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벤저민 그레이엄은 증권사 심부름꾼으로 월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14년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증권분석가로 활약하면서 25세의 나이에 연봉 60만달러를 받는 천재적인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다.
어린 나이에 월가의 돌풍을 일으킨 그레이엄은 유년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홉 살에 부친을 잃은 그레이엄은 형재들과 함께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용돈을 대야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월반을 거듭하는 천재였다.
컬럼비아대 졸업반이던 시절, 그의 학문적 능력을 높이 산 교수들이 학교에 남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과감히 사회로 진출했고 후일 ‘월가의 학장’이라는 별칭을 얻을만큼 주식투자에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레이엄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어려웠던 환경 때문에 돈을 지나치게 존중하게 됐다. 인생의 성공은 큰돈을 벌어 펑펑 쓰는 데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의 귀재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1957년까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투자론을 강의했다. 그 후 제자인 버핏에서 회사를 넘기고 은퇴를 한 뒤 약 20년이 흐른 1976년 그렇게 투자계의 큰 별이 지게 됐다.
◇ 투자1원칙“절대 돈을 잃지 말라”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은 당황스러울만큼 단순하다. 그의 투자 제1원칙은 바로 “절대 돈을 잃지 마라”이다.
돈을 잃으려고 투자를 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의 투자 제2원칙을 들으면 더욱 황당해진다. 그레이엄이 강조하는 투자 제2원칙은 “제1원칙을 항상 명심해라”이다.
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투자의 원칙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해야 돈을 잃는 경우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증권업계나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도 “(변동성이 심한 증시상황에서는)그레이엄의 투자원칙 외에는 정답이 없을 정도”라며 그의 투자원칙을 높이 사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량주·저가매수를 원칙으로 한 장기·분산투자는 오늘날의 주식서적이나 각종 보고서가 추천하는 투자지침임과 동시에 성공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사후 30년지나도 명성은 그대로
그의 제자이자 ‘가치투자’의 꽃을 피운 버핏은 “우리는 그레이엄이 심은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말로 그레이엄에 대한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국내 투자업계에도 ‘그레이엄-버핏’으로 이어지는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자산운용업계 종사자들이 있다.
그들 역시 시장 상황에 따라 운용의 방법만 달리할 뿐, 가치투자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투자자들에게 권유한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 저널도 그레이엄을 워런 버핏과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등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가장 위대한 투자자’ 반열에 올려, 사후 30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의 명성은 더욱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