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 달리 간 총리가 내년 1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하자 이달 내 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반대파의 비난 여론이 사방에서 거세지고 있다.
갈수록 혼미해지는 일본의 정국을 둘러싸고 재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간 총리는 2일 밤(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퇴진 시기와 관련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로드맵으로 제시한 냉온정지 상태가 완료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해 간 총리가 내년 1월까지 집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도쿄전력은 지난 4월 17일 발표한 원전의 냉각 정상화 로드맵에서 원자로를 섭씨 100도 미만의 냉온정지 상태로 유지해 방사성 물질 방출이 억제되는 시기를 오는 10월 중순부터 내년 1월 중순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간 총리가 조기 사임을 부정함에 따라 조속한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민주당 내 오자와 전 간사장,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그룹의 반발이 거세다.
당초 오자와 전 간사장과 보조를 맞춰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 의향을 밝혔다가 반대로 돌아서 민주당내 대립을 조정하는 역할을 자청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간 총리가 조기 퇴진을 부인하자 격노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일 밤 "(간 총리가 이달중 퇴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배반당했다. 인간으로서 최저이며 쓰레기같은 짓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합동 의원총회(중의원ㆍ참의원 의원 총회)를 열어 목을 칠 수 밖에 없다"고 분개했다.
일본 언론들은 간 총리의 사의 표명이 불신임 결의안을 부결시켜 민주당내 분란을 크게 억제한 만큼 퇴진 시기를 둘러싼 대립이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일 불신임 결의안 표결에서는 찬성 152표, 반대 293표, 불참ㆍ기권 33표로 부결됐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2명의 오자와 측근 인사가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다나카 마키코 전 외무상 등 15명의 인사가 기권하면서 분열 양상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국회 운영 전망도 불투명하다.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는 “예산 집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적자국채 법안과 2차 추가경정예산안은 총리 퇴진 후 차기 정권이 해결해야 한다”며 총리의 조기 사임을 촉구했다.
공명당도 “사임을 선언한 총리가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총리가 의욕을 보여도 야당과 참의원에서 협력을 얻지 못하면 중요 법안은 1개도 성립할 수 없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조만간 참의원에 간 총리 문책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재계에는 대지진 피해 수습 등 산적해 있는 과제를 놓고 당파 싸움만 벌이는 정치권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2일 “국난 속에서 대지진 피해를 수습하려면 (민주당과 자민당이) 연정을 구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상공회의소의 오카무라 다다시 회장도 “연정을 계기로 여야가 협력해 대지진 피해 복구에 속도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은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면서 “여야 모두 겸허하게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주일 미군 기지 문제와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놓고 각각 일본과 마찰을 빚어온 미국과 중국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백악관은 총리의 퇴진 시기가 내년 대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일본의 지진 피해 수습이 정국 혼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미국 경제나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에도 차질을 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들도 사태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자에서 "간 총리에게서 리더십을 찾아보긴 어렵다"면서도 "침체된 일본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사의 표명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지도자가 자주 바뀌는 일본의 체질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러시아 타스통신은 "간 총리의 사의 표명은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