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6일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대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담합한 사실이 없는 데도 공정위가 특정 업체 전직 영업사원의 일방적 진술 만을 근거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행정권의 남용이라는 것. 무엇보다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최근 휘발유 공급가격을 인하하며 정부 정책에 협조했는 데 너무한 것 아니냐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6일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개 정유사에 대해 원적지 담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4348억원을 부과했다.
원적지 관리는 정유사가 매출이 높게 발생하는 특정 지역의 다른 회사 폴(간판)의 주유소를 자기 회사로 옮겨오거나 혹은 다른 업체에 뺏기지 않기 위해 각종 특혜를 주는 행위다.
이에 대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 제도를 이용해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진 GS칼텍스를 제외한 정유 3사는 주유소 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서도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관행을 담합에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다고 지적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744억1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현대오일뱅크는 “사회정의 실현 차원에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공정위 과징금을 받은 정유사들이 공동으로 법적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 1379억7500만원, 452억4900만원을 부과받은 SK와 에쓰오일도 “담합한 사실이 없으며 향후 대응절차는 의결서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법적 대응을 비롯한 모든 대응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유사들이 이같이 반발하는 데 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공정위는 2000년대 들어 무려 4번이나 정유사들에게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1986년 담합행위에 대해 과징금 부과 규정이 도입된 뒤 최초 과징금 부과 사례와 단일사건 최다 과징금 부과 사례 모두 정유업계가 주인공이다.
특히 2009년 액화석유가스(LPG) 담합 의혹으로 6689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 폭탄’을 맞은 여파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번 원적지 관리 담합 의혹으로 폭탄을 맞았다. 3년 사이에 부과된 과징금만 1조원이 넘는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유사가 담합 조사의 단골 손님이 되고 있는데 대해 “국내 정유시장이 과점체제이고, 담합은 과점시장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그러나 공정위가 성과를 올리기 쉬운 정유사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징금의 기준이 되는 매출 규모를 감안할 때 정유사의 과징금 규모가 제일 크기 때문에 번번히 조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정유업계는 또 빈번한 공정위의 과징금 때리기로 인한 정유사 이미지 훼손에 대해 누가 책임지냐며 항변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2007년 경질유 제품 목표가격 담합건과 지난해 LPG 담합건도 고등법원에 계류중인 상황”이라며 “결국 소송에서 정유업계가 이긴다면 과징금 환급과 별개로 정유사가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