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으로 일본 기업들의 해외로의 탈출이 가속화할 조짐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경제재정상을 지낸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학 교수는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대지진은 리스크를 부각시켰다”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5년 오사카와 고베 지역을 휩쓴 한신대지진에 이어 이번 대지진과 거대 쓰나미를 또 겪으면서 일본인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케나카 교수는 이번 지진 피해로 일본 기업들의 자본스톡 상실률은 5%로, 한신대지진 때의 2%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내뿜고 있는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복원력이 강한 일본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 일본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일본의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육박하는 가운데 인구까지 감소하고 있어 더 이상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본의 공동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고통과 함께 여름철 전력수요 대비 차원에서 제한송전이 예상되는 등 대지진에 따른 새로운 제약들이 기업들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대지진 발발로 리스크가 가장 큰 기업들은 진앙지 인근에 위치한 동북 지방의 기업이라고 WSJ은 전했다.
호리오제작소의 경우,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지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 본사를 둔 업체로, 직원은 불과 52명이지만 블루레이 디스크 등 디지털 비디오 데스크를 읽어내는 광학 부품에서 30%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호리오는 중국에 2개의 전자부품 공장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은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호리오 마사히코 사장은 “이 지역 사정이 좋지 않아 납품을 제 때에 못해 거래처를 잃을수도 있어 불안해 하는 회사가 많다”고 우려했다.
미야기현청 경제부국 관계자도 “공장을 폐쇄하거나 생산을 중단한 기업들은 주문을 받지 못하면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라인 이전이 쉽지 않다는 점이 가뜩이나 침체된 기업들의 시름을 키우고 있다.
경영 컨설턴트 업체인 앨릭스 파트너스의 칼 로버츠 컨설턴트는 “생산 이전은 쉽지 않다”면서 “특히 정밀 제품은 기술 집중과 특수한 공구 및 능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지진은 일본 생산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대기업들의 약속도 흔들었다고 WSJ은 지적했다.
닛산자동차는 이사 9명중 4명이 외국인으로, 이미 일본 내 생산은 25%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많은 승용차 생산을 해외로 돌릴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자동차는 2월 미야기현의 오히라무라에서 일본 국내 17번째 조립공장의 조업에 들어갔으나 대지진 발생으로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 오히라무라 공장 가동은 이달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7일 발생한 여진으로 계획 변경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이번 대지진 피해지에서 멀리 떨어진 기업들도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규슈를 거점으로 파쇄기, 선별기, 컨베이어 등을 제조하는 나카야마철공소는 동북지역의 부품 메이커로부터 공급받지 못한 부품을, 기존부터 거래해온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메이커로부터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대째 이어온 나카야마철공소의 나카야마 히로시 사장은 “부품 부족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