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커피와 도넛을 준다길래 엉겁결에 친구를 따라간 게 인연이 됐어요.”
국내 대형 증권사에 취직한 이수연씨(가명, 여, 28)는 대학교 4학년이던 지난 2008년, 대학 취업설명회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를 처음 알게 됐다. 이씨는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하던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공수업을 들으며 자원봉사와 동아리활동, 해외 어학연수를 하며 평범하게 지냈다고 한다. 4학년이 돼서야 캠퍼스 리쿠르팅시즌인 3~4월에 시간을 쪼개 여러 회사의 행사장을 찾아다닌 셈이다. 이씨는 회사 정보를 모으고, 인사 담당자와 1대1 미팅을 통해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회사, 내 장점과 회사 인재상이 맞지 않는 회사, 꼭 가고싶은 회사 등으로 분류했다”고 말한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보통 50개 이상의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고, 15곳의 필기를 보고, 5~6곳의 면접을 본다”며 “우선 공채 정보가 뜨면 넣고 봐야한다”는 말을 한다.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정작 더 힘든건 수많은 기업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지원해야 하는 고충이라고 구직자들은 입을 모은다.
본격적인 캠퍼스 리쿠르팅 시즌이 왔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대학교 캠퍼스를 직접 찾아 여러 학생들에게 자사를 알림으로써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회사 홍보도 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취업 준비생에게는 여러 회사의 내용을 알 수 있고 입사 희망 회사의 정보를 낱낱이 알 수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함께 대학생들의 눈과 입을 통해 캠퍼스리쿠르팅의 실상을 들여다 봤다.
◇ 정곡을 찌르는 지원자의 질문, 답변은 제각각
대학생 정씨(여,27, 고려대)가 캠퍼스 리쿠르팅을 돌아다니며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본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연봉’과 ‘육아휴직 '. 회사 채용홈페이지에서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직접 물어본 것이다. 연봉의 경우 지인들을 통해 대체적으로 알 수 있지만 인사담당자들은 정작 제대로 대답을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자동차회사는 만 2년차가 되면 연봉이 5500만원이 넘는다며 솔직하게 말해주는데 비슷한 연봉으로 알려진 한 통신회사는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얼버무린다.”고 정씨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정씨는 연봉만 따져가며 지원할 생각은 아니지만 ‘돈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회사에 믿음이 간다고 말한다. 육아휴직도 같은 맥락이다.
정씨는 “회사가 어떤 원칙을 세워놨는 지 직접 듣고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한 후 정작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할 수 있다”며 “은행 쪽은 육아휴직이 2년까지 보장이 된다는데 다른 대기업 쪽은 3개월을 눈치보면서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 은행 쪽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은 캠퍼스리쿠르팅을 통해서 회사가 홍보하는 내용보다 현실적인 부분을 더 확인하고 싶어하는 셈이다.
◇ 쿨한 인사담당자, “우리는 10%의 리더와 90%의 팔로워를 모십니다”
회사가 내놓는 인재상은 대부분 비슷하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조직과 화합하면서 개성을 드러내는 인재. 구직자들은 문구로 '와닿지 않는' 회사의 인재상과 사내 문화를 캠퍼스리쿠르팅에서 만나는 회사 직원들을 통해 가늠하곤 한다. 간혹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회사도 있다.
국내 대기업은 한 기업설명회에서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은 10%의 리더와 90%의 팔로워를 찾습니다”라고 말해 대학생들을 깜짝 놀래켰다고 한다. 당시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임원은 “매년 뽑는 수백명이 모두 사장, 부사장이 될 수 없지 않겠느냐”며 “유능하고 톡톡 튀는 리더도 필요하지만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조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팔로워도 분명히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의 정년까지 다 보장하겠다”며 대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회사는 “많은 구직자들이 대기업일 수록 학벌이나 스팩 때문에 시작부터 좌절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지원하라, 열린 채용을 하겠다 메시지였다"는 후문이다.
일반 회사들도 캠퍼스리쿠르팅에 나온 직원들의 화법이나 태도, 외모를 통해 구직자들은 “이 회사는 얌전한, 혹은 활달한 스타일의 사람을 선호하는 군"이라는 인식을 받는다고 한다.
◇ 졸업생 선배 투입해 ‘후배 데려와라’
은행이나 증권 등 금융회사는 회사 문화에 큰 차이가 없고, 인센티브나 복리가 좋다는 평이 많아 캠퍼스 리쿠르팅 현장에 지원자들이 대거 몰린다. 대기업 계열사들의 인재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회사에서는 각 대학 캠퍼스 리쿠르팅을 계획하면서 그 대학출신 직원들을 여러 부서에서 소집한다. 작전명은 ‘후배 데려오기’다.
강당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 뿐만 아니라 광장이나 운동장에서 부스를 만들어서 여는 ‘공동 취업설명회’에서는 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데려오는 일도 많다. 예를 들어 고려대에서 열리는 캠퍼스리쿠르팅에는 근처 성대, 성신여대, 서울시립대 졸업생까지 가세하기도 한다. 신촌에 있는 연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근 이화여대와 서강대는 물론 홍익대생들도 얼굴을 들이민다.
공식 일정이 끝난 뒤 저녁을 사거나 맥주를 같이 하면서 지원을 독려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는 이씨는 “지난해 캠퍼스리쿠르팅 때는 과 후배들과 맥주 한잔 하라고 회사에서 지원금을 줬다”고 귀띔했다. 물론 인사부에 근무하는 선배들은 이런 자리에서 살짝 빠진다고 한다. 자칫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선물, 이벤트냐, 유명인사 내세워 인식시키기
“면도기 회사면 면도기를, 식음료 회사면 음료수와 과자를, 보통 기업들도 USB나 고급 펜, 메모지까지 다양한 선물을 챙길 수 있어요.”
캠퍼스 리쿠르팅 행사장에 가면 해당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 상품을 증정하거나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과 책을 주기도 한다. 1년차 사원들이 직접 출연해 제작한 ‘신입사원 일기’ 동영상을 선보이기도 하고 유명한 기업 CEO가 직접 대학가를 찾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조씨(27, 연세대)는 “한 외국계회사에서 여행용 세면도구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가 매일 쓰는 샴푸가 있었다. 그 샴푸를 만드는 게 글로벌기업인 걸 처음 알게 된 적도 있다”고 경험을 말했다.
한 포털회사는 탄성을 자아내는 신사옥 내부사진을 공개해 구직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다양한 편의시설과 독특한 디자인, 외국기업 못지않은 휴식공간을 자랑하며 업계 최고대우를 약속했다. 게임과 포털에 관심이 없던 이화여대 4학년 박씨(24)는 “그냥 잘나가는 회사로만 알았지, 이렇게 좋은 회사인 줄 몰랐다”며 “행사가 끝난 후 지원할 만한 부서 정보에 대해 검색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