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물난리의 후폭풍이 거세다.
호주가 지난 1월 발생한 물난리로 곡물 생산이 줄자 곡물가격 인상→물동량 감소로 인한 해운시황 악화→조선업계 수주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밥상 물가까지 생각한다면 전세계에 걸쳐 호주 물난리의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특히 철강업계가 받는 타격은 직접적이다. 철광석의 수급 불안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굴러다니는 고철도 눈 여겨 봐야 할 판이다.
세계 최대 석탄산지인 이 지역에서 석탄공급이 줄어들자 철강업계를 비롯해 자동차와 조선 등 전방산업으로 원가상승의 도미노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광산업체 호주 BHP빌리턴의 마리우스 클로퍼스 최고경영자(CEO)가 철강 제조에 쓰이는 석탄 원료인 최고급 점결탄 가격 조정을 기존의 분기 단위에서 오는 4월부터는 ‘월 단위로 변경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국내 산업계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BHP빌리턴이 요구하는 가격제도로 변경될 경우 철강업계는 잦은 가격 변동으로 공급계약자인 철강업계와 철강재 수요업계인 자동차, 조선업계의 원가부담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최근 원료 공급업체들의 협상력 강화에 맞춰 공동 대응키로 한데 이어 중국까지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다.
◇ 철강 가격상승 ‘불가피’= 세마리우스 클라퍼스 BHP빌리턴 CEO는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아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을 연이어 방문, 가격 결정 조건을 분기에서 월단위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철광석의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만큼 매월 가격을 현실화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과 박 부회장은 철강 대란을 염려해 철광석과 석탄 등 주요 철강제품 원자재 가격 인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단위로 가격을 조정할 경우 그만큼 가격 변동성이 커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BHP빌리턴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달 24일 신흥국에서의 수요 급증과 호주 홍수 여파로 원료가 상승을 이유로 일본 철강업체들에게 최고급 품질의 점결탄에 기존 분기 가격계약 방식 대신 시장가격을 적용할 것을 요청한 데 이어 한국 수요업체에도 똑 같은 요구를 한 것이다.
지난 2009년 회계연도까지만 해도 철강업계와 BHP빌리턴 등 해외 광산업체들은 점결탄과 철광석 가격을 연간 단위로 계약했다. 그러나 광산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회계연도부터 계약 기간을 분기로 전환했다.
호주는 제철 원료인 점결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무려 50%에 달한다. 세계 철강 업계는 호주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시아 시장의 경우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이런 판에 철광석 가격도 올 2분기 사상 최대치가 될 전망이 잇따르고 있어 국내 철강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지난달 국제 철광석 평균 가격은 스폿(단기)계약 기준으로 t당 189달러다. 최근 2개월 동안 20달러가 올랐다. 점결탄 등 원료탄은 같은 기간 100달러나 상승해 지난달 t당 340달러를 기록했다.
이처럼 철광석 확보가 어려워진 것은 올 들어 호주와 인도 공급량이 줄었기 때문. 최대 철광석 산지인 호주가 50년 만에 최대 물난리를 겪어 4월까지 광산을 가동하기 어려운 데다 세계 3위 철광석 수출국인 인도는 자체 소비를 위해 철광석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향후 국내 철강업계의 원가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부제철 등 철강업체들은 다년간 이들과 계약을 맺고 수입해 들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업체들이 원가부담 때문에 해외자원개발에 직접 뛰어들고 있으나 자원개발 자체가 워낙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글로벌 광산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공급계약액이 높아지면 철강재가격에도 반영할 수 밖에 없어 장기적으로 수요업계 원가부담도 시간문제”라고 덧붙였다.
◇ 조선, 원가부담 커진다 = 곡물 및 철강 수급 불안정은 해운 및 조선업계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가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 후판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물론 물동량 감소로 인한 발주물량이 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직·간접적인 압박으로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철강사들이 올 1분기에는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원재료 가격 상승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후판가격 인상은 지난해 수주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조선업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전망이다. 선박 건조에 사용하는 후판 구매비용은 전체 생산원가의 20% 가량을 차지한다.
한편 후판가격 인상을 놓고 한국 조선소와 일본 철강업체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일본 철강업체들은 철광석·원료탄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후판 수출가를 인상하려는 입장인 반면, 국내 조선소들은 신조가가 침체된 상황에서 후판가격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신조선가 최고점 대비 60% 수준에 불과한 현재 상황에서 후판 가격 인상은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신일본제철 등 일본 철강업체들은 2분기 수출후판가격을 현행 t당 800달러 수준에서 20% 인상한 1000달러까지 인상할 방침을 세우고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대형조선소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일본 업체들과 가격협상이 마무리 되면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업체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시점에서 이번 협상은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호주의 물난리가 전세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