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반정부 세력이 27일 수도 트리폴리 서부의 위성도시 알-자이야를 함락하고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친위세력을 압박하고 있다.
카다피 세력이 포진한 트리폴리로부터 서쪽으로 50㎞ 떨어진 알-자이야의 순교자 광장에서는 이날 민주화 시위대 수천 명이 모여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카다피 체제는 물러나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이 도시가 반정부 세력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을 환영했다.
지난 24일부터 개시된 양측의 교전 끝에 반정부 세력이 장악한 인구 20만 명의 이 도시에서 시민들은 공중으로 총을 쏘며 승리를 자축했고, 일부는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탱크 위에 올라서거나 대공화기 주변에 몰려 있는 광경이 목격됐다고 AFP와 AP 통신 등은 전했다.
리비아 최대의 정유시설과 친카다피 정부군 장교의 숙소가 몰려 있는 이 도시의 한 주민은 이날 알-아라비아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만약 카다피의 보안군이 우리 도시에 진입한다면 전멸당할 것"이라며 "우리는 자동화기와 대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친정부 세력은 지난 26일부터 수도 트리폴리와 카다피의 고향인 중북부 도시 시르테 등지에서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지급하며 반정부 세력과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카다피 정권을 상징하는 녹색 완장을 찬 채 자동화기로 무장한 민병대는 군복 차림의 카다피 친위부대와 함께 트럭을 타고 시내 곳곳을 순찰하며 경계활동을 폈으며, 이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고 외신들이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이와 관련, 리비아에서 전세기편으로 이집트로 탈출한 두산중공업의 임광재(46) 부장은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에서도 군부대가 성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에게도 총을 나눠줬다"고 증언했다.
카다피 세력의 보루인 트리폴리는 상가 철시와 심각한 물자부족 탓에 도시 기능을 상실했으며, 트리폴리 공항은 리비아를 탈출하려는 사람들 수천 명이 몰리면서 거대한 수용소로 변했다.
◇ 반정부 세력 `국가 위원회' 구성 = 리비아의 반정부 지도자들은 27일 반군이 장악한 도시들을 중심으로 과도적인 `국가위원회'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반정부 세력의 압델 하피즈 고카 대변인은 이날 벵가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해방된 모든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위원회가 창설됐다"며 "이 위원회는 과도기에 리비아를 대표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카 대변인은 이 기구의 구성과 권한 등에 대한 협의는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은 26일 카다피의 퇴진 이후에 대비한 과도정부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잘릴 전 법무장관은 반군 세력이 장악한 벵가지에서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3개월 뒤 선거를 치를 계획이라면서 과도정부는 선거 때까지만 존속할 것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에 말했다.
카다피 정권의 유혈 진압을 비난하며 법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과도정부의 지도자로 추대된 잘릴은 또 향후 정치일정에 대해 카다피 측과는 아무런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트리폴리 인근 유혈충돌 계속 = 트리폴리 인근 지역에서는 격렬한 유혈충돌이 계속됐다. 카다피의 탱크부대는 트리폴리 인근의 제3도시인 미수라타에 있는 공군기지를 반군으로부터 되찾으려고 지난 25일 맹공을 시작했으며, 교전은 26일 새벽까지도 계속됐다.
현지의 한 의사는 미수라타 공군기지와 인근 민간 공항에서 벌어진 이틀간의 교전으로 모두 22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리비아에서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민주화 시위 사태로 인한 유혈 충돌로 그간 수천 명이 숨졌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브라힘 다바시 유엔 주재 리비아 부대사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나 "이미 수천 명의 시민이 숨졌으며, 우리는 인명피해가 더 발생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
주요 지역을 장악한 반군 세력이 트리폴리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도 나왔다.
반군 세력이 트리폴리에 진입하면 민간인에 대한 카다피 지지세력의 무차별 학살 행위는 줄어들지만, 친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전면전으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 국제사회 제재 가속화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6일 카다피 정권에 대한 강경한 제재 조치를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15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결의 1970호는 카다피와 그의 자녀 및 핵심 측근에 대한 여행 금지와 국외자산 동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안보리는 또 결의에서 무차별적인 진압으로 1천명 이상을 숨지게 한 행위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즉각 조사에 착수토록 요구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카다피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무기금수와 정권 핵심 관련자들의 자산 동결 등 리비아 제재안에 합의했으며 캐나다와 호주 등 여러 나라도 독자적인 제재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