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본 대해부] <下> 넘버원 증후군이 낳은 어글리 재패니즈

입력 2011-02-17 10:17 수정 2011-02-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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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증에 빠진 사무라이

(편집자주: 미국발 금융위기는 장기 불황에서 겨우 빠져나온 일본 경제를 다시금 침체의 늪으로 내몰았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는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는 중국에 내줬다. 선진국 최악의 재정상황은 당파 싸움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 일본의 경제와 정치, 사회 부문의 문제점을 3회에 걸쳐 분석한다.)

<글 싣는 순서>

㊤ 세계경제 '넘버3' 전락

㊥ 표류하는 민주당...대권은 야당에, 패권은 중국에

㊦ 1등병이 낳은 어글리 재패니즈...패배주의에 물든 사무라이

‘세계 최대 장수국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9000달러 국가’ ‘청결하고 친절한 나라’

일반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내면은 장기 불황과 함께 서서히 곪아가고 있다. 2차 대전 직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후유증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이 고도의 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한 규제와 산업장려책은 효력을 잃은 지 오래인데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던 기술력에서도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 같은 현상이 사회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국기(國技) 스모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관람객들을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100년 넘게 이어져온 스모는 선수들의 도박 파문에 이은 승부 조작으로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일본은 특유의 복잡성 탓에 글로벌화에 뒤쳐지면서 과도하게 경직된 양상을 보였다. 이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으로 대변된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1990년대들어 일본의 제조업이 자국 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애플ㆍ삼성이 주도하는 스마트 기기 시장에 눈에 띄는 일본 제품이 전무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특히 ‘재팬 애즈 넘버원(1등 일본)’이라는 서적이 나올 정도로 만연했던 ‘1등 노이로제’가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 같은 1등 노이로제가 예기치 못한 폐해를 낳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의문의 고령자 실종 사건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00세 이상 고령자들의 행방이 잇따라 묘연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30년 전에 숨진 111세 노인의 가족들이 노령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시신을 미이라 상태로 방치하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

통계상 지난해 일본의 100세 이상 노인은 4만여명. 일본은 10년새 3.5배나 늘었다며 세계 제일의 장수대국이라고 떠들었지만 당시 사건은 1등병이 만들어낸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만 부각시켰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등장도 1등병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작년 출판된 영국 옥스포드대 영어사전에는 ‘hikikomori’라는 단어가 새로 수록됐다. 사전은 히키코모리에 대해 “젊은 남성이 사회와의 관계를 끊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20억개의 후보 중 ‘hikikomori’가 선정됐다는 것은 히키코모리 문제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청년이 ‘묻지마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등 히키코모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만연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오로지 1등만을 추구해온 결과로,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패배주의에 물든 일본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박 스캔들과 승부 조작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일본의 국기(國技) ‘스모’도 1등병이 초래한 일본의 어두운 일면이다.

100년 넘게 서민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한 전통 스포츠가 마약과 폭행, 도박에 이어 승부까지 조작된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장기 침체에 따른 패배주의의 만연,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 사회에 ‘사무라이 정신’이 사라졌다는 탄식도 이래서 나온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WSJ은 일본인은 충격을 받았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며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놓친 데 대한 충격이 일본인들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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