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장 개척할 '글로벌 리딩뱅크' 키워야

입력 2010-10-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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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 금융산업 2020]④ 한국금융 세계화 나설 때

은행을 중심으로 한 국내 금융회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외형 경쟁에 주력했다. 경쟁이 뒤쳐지면 글로벌 금융회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탓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제조업의 돌격대’역할을 한 것처럼‘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지상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리먼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런 추세에 균열이 생겼다. 전 세계 초대형 금융회사들이 위기의 주범으로 몰렸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이런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 규제 강화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최근 탄력을 받기 시작한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계기로 금융 선진화를 위해 합리적인 경쟁구도를 모색, 금융산업의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금융 대형화“어렵네”= 외환위기 이후 대형화를 촉진해 온 국내 금융회사들은 M&A를 통한 외형 확대에 주력했다. 국내 일반은행의 경우 평균 자산규모는 2000년 30조4000억원에서 2008년 말 현재 90조6000억원으로 3배 정도 증가했다.

일반은행 평균자산은 국내 총생산(GDP) 대비 2000년 말 5%에서 2008년 말 8.9%로 상승해 실물부문에 있어서도 은행의 자산 규모가 커져 대형화가 크게 진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은행 규모는 작은 편이다. 2009년 기준 세계 50대 은행의 순위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리금융그룹만이 총자산 기준 79위를 기록했다.

은행들이 주로 국내영업에만 치중해 해외 자산이 별 볼일 없는 이유가 가장 크다. 물론 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증권, 보험 등 국내 모든 금융회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이는 곧 해외 진출한 국내 기업의 금융지원과 선진 거대 은행들과의 경쟁을 위해 대형 금융사가 필요하다는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대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화는 곧 자산·부채·영업행태가 복잡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의 불투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금융시스템 위험이 커지고 중소기업대출 축소 가능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리먼사태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은 은행 인수·합병(M&A)에 대한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볼커룰(Volcker Rule)’법제화를 진행 중이다.

또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가 M&A를 한 뒤 합병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제도 담고 있다. 논란이 일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도 시장점유율 상한 규제 등 중요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대형화를 추진해 왔던 국내 금융회사들에게 볼커룰 도입은 반가울 리 없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대형화에 따르는 장단점의 크기를 면밀히 비교 검토한 뒤 대형화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의 삼성전자’나올까= 따라서 합리적 경쟁 구도를 바탕으로‘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미국이‘볼커룰’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금융사들이 위축된 만큼 지금이 기회라는 것이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부위원장은 “최근 미국이 은행의 대형화를 규제하고 위험한 투자를 금지시키는 볼커룰을 추진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라며“다만 단순히 대형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플레이어’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해외 진출과 글로벌 은행 육성을 위해선 아시아 지역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지주사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는 성장 잠재력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며“문화권도 상대적으로 우리와 비슷해 현지화 전략에 용이한 만큼 적극적인 외국은행 M&A를 통해 아시아 리딩 뱅크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시장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중국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지만 한국기업과 교포에 치우진 영업을 해온 만큼 새로운 전략이 향후 금융사들의 글로벌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지 금융사를 M&A하는 전략이나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확실한 전략을 세우고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스페인과 산탄데르 은행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은 언어와 관습이 비슷한 남미를 타깃으로 현지 중소은행을 우선 인수해 인력과 네트워크를 흡수했다.

이어 대형은행을 차례로 인수해 세계적인 은행으로 성장했다. 스페인이 금융 강국으로 떠오른 것도 산탄데르 은행의 글로벌 경쟁력 덕이 크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도 우리 같은 신흥국 금융기관의 해외시장 진출에 용이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이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춤한 사이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적극적인 M&A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공상은행과 일본 미쓰비시UFJ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향후 10년 이내에 국내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의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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