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에 대해서도 불안감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는 증시 약세와 채권시장의 강세로 반영되고 있다. 5회에 걸쳐 글로벌 경제를 분석한다)
<글 싣는 순서>
① 소프트패치 對 더블딥 논란...경제 전망도 어둡다
② 자금 대이동..엔화 고공행진 어디까지
③ 중국 너마저...지표 악화
④ 영국 경제도 '먹구름'
⑤ 고용시장을 살려라...고용 안하는 5가지 이유
외환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엔화 강세에 팔짱만 끼고 있던 일본 정부가 마침내 저지에 나섰다.
200개 수출기업을 상대로 엔화 강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결정을 관망해 지난 9~10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완화를 포기한 일본은행을 자극하기 위한 선제조치로 해석된다.
11일(현지시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한때 달러당 84.72엔으로 치솟아 1995년 7월 이래 15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경기 회복 둔화 우려로 미 장기금리가 하락,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축소가 엔 매수ㆍ달러 매도를 부채질 한 영향이다.
전날 도쿄시장에서 10년만기 일본 국채수익률은 한때 0.995%로 하락해 1주일 만에 1% 아래로 내려섰다. 미국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한때 2.6797%를 기록하며 16개월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일본 금융당국이 엔고를 방치할 경우 엔화 가치는 달러당 79엔대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새어 나오고 있다.
◆ 초엔고 시대.. 수출기업들은 죽을 맛
엔화 강세는 수출의존도 높은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수출기업들은 올해 상정환율을 90엔대로 상정했지만 환율은 이미 이 수준을 뛰어넘어 대폭의 실적 하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도요타의 경우 지난 1분기(4~6월) 2116억엔의 영업흑자를 달성, 2년만에 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실적전망은 상향 수정했지만 상정환율을 달러당 90엔으로 동결했다.
도요타는 중장기적으로 85엔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엔화가 달러당 1엔 오르면 300억엔의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현 수준의 엔고가 계속되면 실적하향은 피할 수 없다.
해외 비중이 70%가 넘는 소니는 엔화가 1엔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 20억엔이 감소하며 혼다는 170억엔의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주요기업들은 장기적으로 해외로 생산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태세다.
노무라 증권 금융경제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90엔에서 10% 이상의 엔고가 향후 1년간 지속될 경우 수출 의존도 높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0.5% 낮춰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리스크가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1995년 당시는 달러당 엔화가 85엔을 돌파한 후 3주 만에 사상 최고치인 79엔대를 기록했다”며 “미 경제에 더블딥 우려가 고조되는 만큼 엔은 사상 최고치를 또 갈아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국ㆍ유럽ㆍ중국은 나몰라라
현재 엔화 강세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미국과 유럽 경기에서 비롯된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른 것이다.
미 연준은 1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향후 경기 불안을 이유로 2008년 가을부터 경기부양차원에서 매입한 만기가 도래한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의 원리금을 장기 국채에 재투자, 시장에 대한 자금공급량을 2조달러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을 정했다.
미 국채 매입이 확대되면 장기금리가 하락해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일 수 있지만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를 좁혀 달러 매도ㆍ엔 매수를 부추긴다.
또 미국의 개인소비 침체를 배경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수출을 현재의 2배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표방, 수출 확대로 경기회복을 도모할 셈이다. 미국의 수출에는 달러 약세가 유리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 점에 주목해 대량의 달러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통화 약세로 경기 회복에 도움을 받고 있는 유럽 당국도 엔화 강세에 쾌재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 당국자는 10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엔고를 저지하기 위한 일본의 환율개입을 유럽 당국은 환영하지 않는다”며 “주요 중앙은행의 공조 개입 가능성은 작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최근 1개월 반 동안 달러에 대해 엔화가 과도하게 오른 것은 인정하지만 재정위기로 혼란스러웠던 유럽 정세가 겨우 정상화한 데는 엔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여기다 일본 국채 매입 비중을 느리고 있는 중국도 엔고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국은 올해 첫 4개월 동안 62억달러 어치의 엔화표시 채권을 매입했다. 이는 앞서 최대였던 2005년 같은 기간 매입 규모의 2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장기적인 통상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엔화와 유로화 가치 상승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엔화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질주하는 가운데 시장의 시선이 일본은행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행은 지난 9, 10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존의 금융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는데 그쳤다.
시장에서도 별다른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엔화가 계속 강세로 치닫자 일본은행의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 개입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온 일본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것도 일본은행의 개입을 자극하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된다.
그 동안 일본 정부와 여당은 “환율 동향을 주시하겠다”며 경계감은 강화하면서도 미국의 이해를 얻기 어려운데다 일본 단독으로 개입에 나서봤자 효과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시장 개입을 꺼려온 것이 사실이다.
엔고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긴급조사에 나선 나오시마 마사유키 경제산업상은 “일본기업이 큰 환율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며 “이것이 국제적으로 공정한 경쟁조건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은 작년 11월 두바이 쇼크 이후 엔화가 달러당 84엔대로 급등했을 당시 추가 완화를 단행해 90엔대로 떨어뜨린 바 있다. 시장에서도 임시방편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에서 일본은행의 개입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0.1%로 3개월물 이상의 자금 공급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새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