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급변하면서 제품의 라이프 싸이클이 급속히 단축되고 있다. 발매 후 1년은 고사하고 불과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제품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국내 의약계엔 '박카스 신화(神話)'라는 말이 있다. 반세기 동안 한결같이 서민의 피로 회복제로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1961년 정제 형태로 처음 출시된 동아제약 '박카스'는 1963년 현재와 같은 드링크 형태로 바뀐 뒤 2008년까지 약 162억9000만병을 팔았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 49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박카스는 처음에 간장보호에 중점을 둔 종합강간영양제로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췄다. 음주전후에 박카스를 복용하면 간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캠페인과 함께, 전사원이 나선 대량 샘플링은 곧 열매를 맺어 발매 후 몇 달만에 '박카스-정'의 월간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제제 기술이 미숙한 탓에 정제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가 녹는 문제가 발생해 대량 반품사태가 빚어졌다. 긴급한 제품개선 노력으로 당의 문제는 곧 해결됐지만 이미지가 한 번 손상된 제품은 시장에서 호응도가 현격히 줄어들어 새로운 대책을 수립할 수 밖에 없었다.
동아제약은 '박카스 정'의 제형을 당시 소비자 호응도가 높은 20cc 앰플제로 변경한 '박카스 내복액'을 전격적으로 재발매했다. 청량감이 우수했던 박카스 내복액은 출발이 순조로왔지만 앰플 용기로 인한 안전사고와 운반과정 중 파손사고가 자주 발생해 동아제약은 제품 개선을 한차례 더 실시해야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제품이 현재와 같은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 디'였다. 자양강장드링크 제품의 후발주자였던 박카스 디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사운을 건 대량생산, 대량광고, 대량판매 전략, 이른바 3M(Mass) 전략을 세우고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을 전개했다.
동아제약은 당시 전형적인 의약품 형식이던 의사, 약사 대상의 전문지 광고에서 탈피, TV, 라디오,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모든 매체를 활용해 대량광고 활동을 전개했다.
톱니바퀴 모양의 심벌 도입, 캐치프레이즈의 활용,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 적절한 매체 믹스, 캠페인 광고, 증언식 광고, 스폰서형 광고 등 다양한 박카스의 광고 전술은 발매 1년만에 드링크 시장 1위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현재까지 국내 의약품 매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박카스는 한국 광고사의 효시가 되고 있다.
또 동아제약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되는 당시의 의약품 유통 방식을 탈피, 과감하게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구축해 박카스를 유통시켰으며 이러한 유통 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의 기반이 됐다.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개의 약국에 직접 방문해 박카스를 공급하고 있다.
박카스는 이후 대중광고 금지, 사카린 파동, 식품드링크의 시장잠식 등 몇 차례의 시련을 겪었지만 1위 자리를 꿋꿋이 지켜냈다. 특히 1990년대초 '박카스 디'에서 '박카스 에프'로 변경됐고 2005년 3월 기존의 '박카스에프'에서 타우린을 두배(2000mg)로 늘리며 14년만에 '박카스D'로 업그레이드됐다. 2005년 8월8일 박카스는 여성과 젊은 소비자들을 위해 카페인 성분을 제외한 '박카스 디카페'를 발매했다.
장수상품은 오랫동안 그 제품을 믿고 구매해 준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아제약은 그러한 소비자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박카스 발매이후 현재까지 맛과 품질에 대한 원칙을 지키고 1병의 박카스를 만들기 위해 30여가지 공정과 완벽한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타우린 2000mg을 비롯해 각종 생체 활력성분이 적절하게 배합된 황금처방 피로회복제 '박카스'는 발매 당시의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이제 '국민드링크'라는 애칭을 얻으며 반 세기 동안 소비자 곁에서 한결같이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