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악몽이 재현되면서 월가가 출렁이고 있다. 미 증권당국이 월가 대표 투자은행을 고소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폭풍이 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제2의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월가의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는 물론 증권시장과 상품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월가 대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맨해튼 법원에 고소했다. 혐의는 증권사기였다.
SEC는 골드만삭스가 헤지펀드 폴슨앤컴퍼니와 짜고 상품을 구성해 투자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숨긴 채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밝혔다.
SEC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상품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폴슨앤컴퍼니가 공매도와 같은 숏 포지션을 취한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상품은 모기지증권(RMBS)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부채담보부증권(CDO)으로 지난 2007년 4월 설정됐다.
문제는 기초자산을 폴슨앤컴퍼니가 사실상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공매도를 주로 했던 만큼 가격 하락에 베팅했고 이를 통한 수익창출을 위해 가격이 떨어질 부실종목을 주로 선정했다.
골드만삭스는 폴슨앤컴퍼니의 개입 사실을 숨기고 제3자가 포트폴리오를 만든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였다.
폴슨앤컴퍼니는 일종의 지급보증이라고 할 수 있는 크레딧디폴트스왑(CDS)를 숏포지션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골드만삭스는 여기에도 개입하면서 폴슨앤컴퍼니가 적은 돈으로도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도록 레버리지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폴슨앤컴퍼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뒤 엄청난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2007~2008년 폴슨앤컴퍼니가 번 돈만 최대 200억달러로 추정된다. SEC는 같은 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10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월가의 대표은행이자 미국 금융계의 상징과도 같다. 이번 사태로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케네스 렌치 SEC 구조화상품 담당 국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 미국 부동산시장과 관련한 금융상품을 증권화한 투자은행은 물론 금융 관행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앞서 투자은행들이 벌인 어두운 금융거래가 전면적으로 파헤쳐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로 한동안 주춤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상원에 계류중인 금융개혁법안은 5월말 통과가 유력했지만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은행위원장(민주당) 이날 "월가의 추악한 관행을 끝내고 경제가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개혁안을 통과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골드만삭스의 출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폴슨앤컴퍼니의 행태가 월가의 관행이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릴린치 역시 네덜란드계 라보은행으로부터 골드만삭스와 같은 이유로 피소됐다.
라보은행에 따르면 메릴린치는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헤지펀드에게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라보은행은 맨해튼 연방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메릴린치는 골드만삭스와 비슷한 수법으로 15억달러 규모의 CDO를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 사태로 글로벌 증시 전망도 어두워졌다. 금융위기 악몽이 되살아난데다 소송으로 월가 금융기관이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브래드 힌츠 번스타인리서치 애널리스트는 "골드만삭스는 7억650만달러 규모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골드만 폭탄'으로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120포인트가 넘게 빠지면서 1만1018.66을 기록했다. 앞서 6일 연속 강세를 통해 올랐던 247포인트의 절반 이상을 날린 것이다.
나스닥 역시 1.4% 급락하면서 지수 2500선이 무너졌고 S&P500지수는 20포인트 넘게 하락해 1200 선이 붕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