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왕립과학원이 14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다론 아제모을루(국내 번역서 저자 이름으론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와 사이먼 존슨 교수, 시카고대 제임스 A. 로빈슨 교수를 선정했다. 수상자들은 국가 성패를 가르는 열쇠로 제도를 주목한다. 왕립과학원은 “그들의 통찰은 민주주의와 포용적 제도를 지지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 발전 촉진에 중요한 진전 방향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들의 연구 관점과 성과는 아제모을루와 로빈슨이 공동 집필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년)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베스트셀러에 따르면 경제 제도의 한편에는 보편적 민주주의, 강력한 재산권 보호, 효율적 시장경제, 불평등 예방 등을 골자로 하는 포용적 제도가 있고, 반대편에는 독재와 권위주의를 가리키는 착취적 제도가 있다. 번영의 길을 걷는 국가는 예외 없이 포용적 제도를 택한다. 공정 경쟁 환경을 보장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지향하는 방향에 서는 것이다. 이 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추천도서로 꼽기도 했다.
이들 3인방에게 대한민국과 북한은 경제 제도의 중요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이다. 국가 성패를 가르는 것은 지리적·역사적·인종적 조건이 아니다. 제도가 정답이다. 남북한의 엇갈린 운명만큼 이를 명확하게 입증하는 사례도 흔치 않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노벨상 발표 후 공동 회견에서 “남북한은 분단되기 이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격차가 열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선 “큰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존슨 교수는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담을 이룬 나라 중 하나”라고 했다. 한국 경제의 성취를 다른 나라들이 지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수출지향적 경제의 모범으로 한국을 지목한 로빈슨 교수는 “한국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50년간 오랜 길을 걸어왔다”면서 “지속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문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효율적 성공 방정식이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 정상 작동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공든 탑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국가적 숙제 보따리가 여간 무겁지 않다. 노벨상 3인방 관점에 따르면 이 역시 어떤 제도를 만드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제도는 정치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국민을 대리하는 정치인 역할과 입법 권력이 중요하다. 아제모을루·로빈슨 교수는 정치가 통제권을 지니면 미래 경제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불안의 징후가 안팎으로 수두룩하다. 민생은 뒷전인 채 특검·탄핵 정국에 빠진 국회부터 입법부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 미래 성패를 좌우할 노동·교육·연금·의료개혁조차 오랜 정쟁에 가로막혀 진전이 없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고령화 문제 등도 부담이다. 존슨 교수는 “(국가의) 가난 중 너무 많은 부분이 불행하게도 오래된 정치·경제적 제도의 결과”라고 했다. 국운과 국부를 갉아먹는 불량 제도가 뿌리내리지 않도록 다들 눈을 크게 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