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일·가정 양립 지원이 대폭 확대된다. 다만, 정책수단은 여전히 육아휴직에 집중돼 있다.
9일 국회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 시 1인당 육아휴직 사용기간이 최대 18개월로 확대된다.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 자녀 연령도 8세 이하에서 12세 이하로 상향 조정된다. 여기에 육아휴직급여가 월 최대 250만 원으로 인상되며, 휴직급여의 25%를 공제해 직장 복귀 6개월 후 돌려주는 사후지급제도가 폐지된다. 이 밖에 육아휴직 신청 편의를 위해 출산전후휴가(이하 출산휴가)·육아휴직 통합신청이 도입된다.
일·가정 양립 분야에 대한 미흡한 투자는 2006년 이후 300조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합계출산율이 감소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왔다. 본지가 연차별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성과평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실집행된 명목상 저출산 예산은 약 307조 원인데, 이 중 일·가정 양립 지원 분야 예산은 4.4%에 불과했다. 내년에는 육아휴직급여 인상 등에 따라 일·가정 양립 분야 예산이 2021~2022년 2년간 집행액을 넘어서게 된다.
다만, 육아휴직 개편에 매몰된 정책은 한계다. 고용보험 피보험기간이 합산 180일을 넘으면 사용할 수 있는 출산휴가와 달리, 육아휴직은 ‘계속고용 6개월’ 제한이 있다. 출산휴가보다 사각지대가 넓다. 2021년 기준 출산휴가 사용자의 18.5%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했다. 전체 취업자인 출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육아휴직 사용률은 40~50% 수준으로 추정된다. 합계출산율 제고 측면에서 육아휴직 개편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육아휴직은 근로자에게 혜택이지만, 사용자에게 규제다. 육아휴직 및 육아휴직과 연계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확대가 ‘모성 페널티’로 작용할 수 있어 사용 대상·기간을 더 확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상 확대는 악용 가능성도 있다. 올해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임기제 공무원이 임용 1개월 만에 육아휴직을 사용한 일이 있었다. 공무원은 ‘계속고용 6개월’ 제한이 없다. 이미 자녀를 양육하던 중에 애초에 휴직급여만 수령할 목적으로 ‘위장취업’한 것이다. 전면적인 육아휴직 대상 확대는 이 같은 다양한 부작용을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육아휴직에 정책이 매몰되면 휴직급여 인상 외에는 더 쓸 카드가 없다. 이 때문에 일·가정 양립 분야 정책을 출산휴가 개선, 인센티브 강화 등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제는 규제보다 정부 지원사업에서 일·가정 양립 지표 반영을 확대하는 등 취약 사업장에 대한 인센티브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